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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으로 풀어본 자린고비의 실체
게시물ID : humorstory_4457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리리맇
추천 : 1
조회수 : 9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14 10:42:44
우연히 TV 동화로 자린고비를 봤습니다.
 
알고 있는 얘기였는데도 문득 나이가 들고 다시 보니 조금 묘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지한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전제를 두고, 거기에 모든 이야기에는 저번에 깔린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니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화에서는 구두쇠의 레전드로 나오는 자린고비인데사실은 그런 일화들이 다들 당대의 정치 풍자에 대한 것이라면
거기에 더 나아가 어쩌면 자린고비는 그런 당대의 부당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자신의 행동으로 풍자하거나 혹은
개선하여 백성들의 삶에 기여한 우리가 모르는 다크 히어로였다면?
 
그런 뻘 망상으로 일화들에 대해서 썰을 풀어봅니다.
 
 
- 우선 첫번째로 된장에 앉은 파리를 끝까지 쫓아가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을 빨아먹었다는 우화. 이건 당시 지방의 열악한 위생
상태에 대해 지역 리더의 입장에서 해충 박멸을 앞장서서 하는 모습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이야 별 것 아니게 생각하지만
중세에 위생상태는 심히 열악했죠. 밥에 붙은 검은 점들이 콩인줄 알았는데 다 파리였더라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대에 그런 해충과 쥐 같은 유해 생물들을 철저히 박멸하지 않으면 큰 전염병이 돌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 깨어있는 중세의 지방 영주들은 영민들에게 쥐를 잡아 불태우게 하고, 하수도를 청소하고, 검역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것으로 흑사병의 위기를 막아내었죠. 근데아무래도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당대 사람들은 그런 일화에 대해
하메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상당히 왜곡된 동화로 후세에 전하게 되죠. 자린 고비의 경우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집요하게 해충
박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 백성들이 우스개처럼 파리에 묻은 된장이 아까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농담한 것이 남은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선을 만져서 손에 잔뜩 묻히고 와 생선국을 끓인 며느리에게, 솥이 아니라 우물에 손을 씻었으면 두고두고 생선국을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 이야기. 아마도 이건 블랙 컨슈머에 대한 빈정거림이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와는 달리 정말로 며느리가 손에
묻은 것만으로 국을 끓이진 않았을 것이고, 실제로 며느리는 판매하는 상품을 뒤적거리면서 훼손하고 훼손된 생선을 싼 값에 사서
국을 끓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그걸 본 자린고비가 거기서 한마디 하게 되는거죠. 아예 죄다 사서 우물에 풀면 두고두고 생선국을 먹는거 아니냐고요.
이건 어쩌면 그런 식으로 상품을 훼손해서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소비의 행태가 장기적으로는 공급 의욕을 꺽고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품질이 낮은 상품을 돌아가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을 간파해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며느리가 소박을 맞고 가는 길에 빨래하는 여인들에게 하소연을 하자, 여인들이 아예 냇가에 손을 씻었으면 온 동네가
생선국을 먹었겠다는 말을 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그런 식으로 자기 이기심으로 상품을 훼손한 며느리에 대한 동네 여자들의 비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 식사를 할 때 굴비를 매달아 놓고 그걸 보면서 반찬 삼아 먹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가족과
식사하는 와중에 그랬다는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암행어사 앞에서 그랬다는 버전이죠. 만약에 후자라면 이건 당시의 조세 제도에
대한 정치 풍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에 특산물을 세금으로 받치는 공납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공납의 관리가
부실해서 실제로 생산지에서 과도한 할당량을 받아 힘겨워하거나 혹은 나지도 않는 특산물을 요구받는 경우도 있었죠.
 
자린고비는 그런 당시의 부조리한 조세 구조에 대해서 암행어사 앞에서 대놓고 비판을 한거죠. 봐라. 생산지인 여기서도 직접 먹지
못하고 저 위에 매달아 놓고 입맛만 다시는 것이 바로 공납이다. 굳이 이런 부조리한 세금 착취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나랏님 진상품이라는 명목으로 정작 저것을 키우는 우리들 조차도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라고 말한거죠. 그걸 너무 대놓고
하면 위험하니 비유적인 행동으로 암행어사에게 고한거죠.
 
 
- 간장 종지에 간장을 너무 많이 따르자 그걸 나무라니, 며느리가 너무 적게 따르면 숟가락이 바닥에 닿아 닳아버려서 더 손해라고
한 이야기. 며느리의 반격 에피소드죠. 이 이야기에서는 저는 당시의 결혼과 집안의 경제권에 대한 숨은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일단, 자린고비가 말한 간장을 많이 따르는 것이 낭비는 맞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의 식사문화와는 달리 조선시대의 식사문화는
겸상이 아닌 각상이었습니다.
 
그러니, 각상에 놓인 간장이 많이 따라져 있다면 좀 아깝단 생각을 자린고비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할법도 하죠. 그리고 당시에는
집안의 경제권에 대해서는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했죠. 그래서, 자린고비는 이런 의미로 말한거죠. 경제권을 쥔 사람이 너무 손이
큰 것이 아닌가? 그런데 며느리의 반격이 조금 의미심장합니다. 숟가락이 닳는 것을 지적했죠? 일반적으로 당시에 숟가락은 혼수품
이었습니다. 한마디로며느리가 시집오며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깐 며느리는 돌려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재산에 대해서는 쓰는 걸 무신경히 여기면서 시댁 집안
운영에 대해 손이 큰걸 지적하는 것이 도리에 맞습니까? 라는 비난인 거죠. 드물게 자린고비가 반박하지 못하고 깨갱한 에피소드라는
것이 왠지 그런 며느리의 당당한 논리에 맞는 지적과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순종적인 여인과는 다른 여성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닌가 싶네요.
 
 
- 부채가 닳는 것이 아까워 한 귀퉁이만 펼쳐 부치는 것을 보고,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며 자기 목을 흔들었다는 이야기. 이건
정말로 당시 양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아닌가 합니다. 부채라는 것이, 실제로 냉방을 위한 도구라기 보다는 당시에는
사대부들의 허영을 채워주는 사치품, 현대의 여성들의 핸드백과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유명한 문인들의 글이나 그림을 받은
부채는 고가에 판매되어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 가지기를 바랬다고 하죠.
 
그중에는 실제로는 내면에 깊이가 없이 변화하는 사회상에 따라 돈으로 양반 지위를 사거나 혹은 명가의 자제라도 깊이가 없는
바보들이 상당히 있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허세를 부리고 싶으니 부채에 대해서는 고가의 유명한 문인의 것을 어떻게든
입수해 과시를 했을 것이고, 행여나 그걸 망가지기라도 할까봐 애지중지 했겠죠. 자린고비는 그걸 비난한 겁니다. 어차피 부채의
본래 용도로 쓰지도 못할 물건이면 차라리 네 쓸모없는 머리라도 흔드는 것이 낫지 않냐는 거죠.
 
 
-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굶주리자 자기 창고에 곡식을 나눠줘서 구제를 했는데, 감동한 백성들이 공덕비를 세우려 하자 화를 내며
집안을 걸어 잠그고 그 후로 더 구두쇠가 되었다는 이야기. 무지한 백성들에 대한 실망과 개인의 선행에 의지하지 않으면 위기관리가
안되는 정부 체계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 자린고비의 선행을 주목하기 보다는, 일개 개인의 보유
곡식보다도 부족한 곡식과 구호 체계를 가진 관료제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지방의 유력자로서 그런 위기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관아의 모습에 참다 못한 자린고비는 자기
사재를 털어 백성들을 구휼하죠.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위기 탈출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신을
영웅으로 받들고 백성들은 그 정치 프레임이 갇혀서 그를 칭송하며, 없는 재산을 털어 공덕비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게 되죠. 한마디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사라지고, 일개 개인이 백성들을 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만들어 버린거죠.
 
이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백성들은 관아를 찾는 대신에 자린고비에게 기대를 하게 되겠죠. 이건, 부조리한 겁니다. 국가와
사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한 개인의 희생을 토대로 상황을 연명해 나가는 고사 직전의 상황인거죠. 그래서, 자린고비는 그런 관아의
교묘한 술책과 그것에 낚여 자신을 추앙하고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못하는 백성들에게 절망하고 문을 걸어 잠그게 된거죠. 하지만
결국 다시 위기가 터지면 구할 것은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제 살을 깍아가며 다시 그 날을 대비하면서요
 
 
찾아보니 자린고비의 실존 인물은 17세기에 살았던 조륵이라는 인물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숙종대의 인물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저런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그가 느꼈을 심정들이 그럭저럭 맞아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어디까지나 망상을 담은 해석이니 그저 재미로만 생각하고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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