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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친구 하나를 잃을 뻔 했었던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8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되능교
추천 : 5
조회수 : 11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2/02 19:30:30
길고 길었던 입시전쟁이 끝나고, 20살이 된 우리는 해방감과 함께 오래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전국 술집 탐방을 시작했다.

허나 지갑 사정만큼은 전국구가 아닌 면읍리에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우선 나고 자란 우리 동네부터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은 채 긴 여정의 발걸음을 떼었다.

처음엔 가볍게 산낙지와 함께 소주잔을 비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제외한 두 친구 중 한 친구의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애초에 알콜과 거리가 있던 친구였기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문제가 된 건 다름아닌 그 친구의 그루브였다.

곁눈질로 보아도 그 녀석의 움직임은 접시 위 낙지들과 다를게 없었고 걱정이 된 우리는 네놈이 저기 저 수족관의 광어 옆에 자리잡고 싶지 않다면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이미 연체동물이 되어버린 친구는 우리의 애정어린 조언을 무시한 채 뱃속에서 낙지들이 변신합체를 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다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남겨진 우리 둘은 아랑곳않고 술잔을 기울였고, 포켓몬과 디지몬 중 뭐가 더 비싸냐는 대화주제가 오갈때 쯤 우리는 2가지 사실을 깨닳을 수 있었다.

하나는 지우는 고자에다 성격파탄자였다는 사실과 또 하나는 우리의 불낙볶음면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제서야 우린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가운 거리로 향했다. 허나 그건 분명 마감시간이 임박한 가게에서 철없이 포켓몬 이야기를 꺼내고있는 손님들을 지켜보는 알바의 눈총때문이었으며, 우리의 오랜친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이 녀석이 어디가서 나가죽는다면 우리의 얇디 얇은 지갑에서 조의금이라는 돈도 빠져나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그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머지 않은 KB국민은행 앞 돌계단 위에 포근히 자리잡은 채 파라오마냥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잠들어 있었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ATM기기에서 나온 성스러운 불빛들은 나와 내 친구로 하여금 영혼이 승천하는 것과 같이 보이게 하기 충분했고
우린 우리의 조의금을 지키기 위해 곧장 그 영혼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다행히 그 육신은 돌아간 입이지만서도 길고 편안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오랜 친구를 잃을 뻔한 설움에 울컥해버린 나머지 돌아간 입을 되돌린다는 명목 하에 식어버린 육신의 뺨을 휘갈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냉불낙볶음면이 되어버린 친구는 우리의 자극요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허나 다시 눈을 뜨게 된게 천국이 아닌 헬조선이었던게 서러웠는지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니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울분을 토했고
우리는 어리둥절해하며 니 새끼가 진정 천국으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로구나, 원한다면 직행은 아니더라도 순환선으로는 보내줄 수 있다며 그 친구의 얼마없는 멀쩡한 부위를 찾아 가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사지를 받고 황홀경을 경험한 친구는 이내 정신을 되찾고 조금은 진정된 목소리로 방금 겪었던 꿈 속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기가 꿈 속에서 요단강을 반 쯤 지나왔을 무렵, 자기의 이름을 부르짖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더라.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아 내가 인생을 허투루 살진 않았었구나, 좋은 친구들이 여기까지 마중을 나와주었구나라고 느낄 찰나
조의금을 넥슨캐쉬로 내도 되냐는 물음이 들렸고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오른 친구는 문상은 받아도 돈슨캐쉬는 안받는다고 생각했는지
사공에게 다음번에 따따블로 줄테니 U턴 좀 해달라고 부탁하여 끝내 이승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꿈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명줄이 긴 이 친구가 결국 자기네 가문 최초로 뉴스에 나올 법한 기회를 걷어차버린 것은 확실했고 우린 그렇게 우리들의 조의금을 지킨 채 전국투어의 2번째 코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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