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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게시물ID : humorstory_4481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ena1
추천 : 11
조회수 : 169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2/24 0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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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매년 언제 장가갈 거니 콤보로 물어뜯기다 보니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다.
눈치가 있는 친척들은 이제는 슬금슬금 그런 질문을 자제한다.

그게 오히려 더 서글퍼진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역시나 언제나 늘 눈치 없는 사람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장가 언제 갈 거냐고 묻는 게 명절 스트레스라며?" 

라고 호탕하게 웃으시는 큰아버지가 이미 스트레스를 주신다.

"아무리 그래도 베트남은 안된다잉~"

본인은 재밌는 농담이라고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아픈 어퍼컷이다.

방파제가 되어 모진 파도를 다 두들겨 맞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동생들은
일등 보험이라도 가입한 마냥 킥킥 거리고 있고 다들 웅성웅성거린다.

이번 명절에도 역시 만신창이다.
결국, 이 스트레스는 동병상련의 친구들과 풀 수 밖에 없다.

"아니 큰 아버지가 너무했네!"

역시 친구들이 최고다.

"조성모 아시나요 뮤직비디오 보면 베트남 처자들이 신민아 닮아서 얼마나 이쁜데"

친구가 최고란 말 취소. 아니 왜 논점이 그리되는데. 
아니 왜 신민아 차기작 얘기로 흘러 가냔 말이다. 

게다가 저 녀석은 무슨 매스컴 신봉론자도 아니고 뜬금없이 라이터 불을 후 불어서 
꺼보라고 하더니 '너야 날 부른 게?' 이따위 허깨비 짓을 하는 놈이다.  

다른 친구가 그 녀석을 나무라며 다시 화제를 겨우 돌려놓는다.

이 녀석은 내 충격을 이해라도 하는 듯 대뜸 큰아버지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큰아버지의 심각한 오류를 본인이 따끔하게 지적하겠노라고.

적당히 오버하면서 위로하려는 퍼포먼스치고는 나름 진지한 표정이었다.

"베트남은 안된다고 하시면 안 되지!!"

눈물이 핑 돌 정도다.

"베트남도 안된다고 하셔야 정확한 표현이지."

이쯤 되면 머리가 돌 것 같다.

우리말 사용 실태에 대해서 한탄을 잘하는 국문학도답게 올바른 조사 사용법을 침을
튀며 설명을 했다. 이 녀석은 어차피 다른 국가도 안되고 한국도 안되기 때문에
베트남 역시도 안된다고 하는 것이 응당 맞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놈들은 왜 고개를 끄덕거리는 건데. 

작금의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외교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막연히 유엔을 동경하는 친구가 세계 평화를 걱정해대기 시작했다.

억울하다. 아니 왜 나 때문에 외교단절이 되냐고! 왜 내가 세계 평화를 헤치냐고!  

어설픈 위로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슬픔을 희화화하는 것이
역시 기분이 더 더럽다.

웬일로 잠자코 있던 물리학도가 말을 꺼낸다.

"얘들아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부하다. 
아마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늦은 거니 포기하자 이따위 말이겠지.

"...가장 늦은 것은 아니야."

웬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스타일의 격려가 오나 싶었다.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늦는 것이 점점 더 갱신되는 중이니까 이미 그때는
 가장 늦는 순간이 아니야. 그건 오류인 거지. 생각했을 때는 이미 더 늦어지고 있어."

이 녀석들의 귓방망이를 가장 후려치고 싶은 순간이 점점 더 갱신되는 중이다.

다음 명절에는 베트남행 비행기나 예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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