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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의 동거
게시물ID : humorstory_448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겡스터(가입:2017-05-10 방문:8)
추천 : 2
조회수 : 62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5/11 15: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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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벌레라고 하니까 일베를 상상하셨나요? 그런 벌레라 부르기도 아까운 것들 하고는 절대 같이 안 삽니다.


내 자취방은 버려져 있던 옥상에 주인집 할머니의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마음에 급조된 조립식 건물이었다.

전에 살던 방의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다섯 평도 안될 것 같던 작은 쪽방에 살던 내가 복덕방 아저씨를 따라 그 옥탑방을 처음 봤을 때 그 방대한 면적은 나만의 아방궁을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약간의 마마론,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나의 지갑 사정은 아방궁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했고, 매달 부담되는 월세 고통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처음 같이 산 놈은 발 대신 청국장을 달린 녀석이었다.  구수한 향이 좋지 않을 것 같냐고? 그럼 당신이 한 번 인간 청국장과 딱 3일만 살아볼 것을 권유한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녀석의 발도 함께 넣어서 버릴까 고민했고, 된장과 똥을 냄새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잃어버린 후각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녀석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두 번째 같이 산 놈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집안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매일 같이 샤워하고, 정리정돈이 몸에 베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고 밤이 되면 녀석은 무시무시한 굇수로 돌변했다. 어떤 날은 킹콩처럼 포효하며 내 명치를 두들겨 팼으며, 다른 날은 고질라처럼 나를 발길질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서큐버스는 흐뭇한 꿈과 함께 몽정이라도 하게 하지... 매일 밤 녀석의 가정 폭력에 이은 불면에는 그런 황홀함보다 육체적 고통만이 따랐다.  


결국 난 다른 지출을 아끼고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 며칠간 혼자 사는 자유와 여유를 즐겼다. 그러나 곧 내게 찾아온 것은 심심함과 외로움이었다. 아무리 냄새가 났어도 가정폭력이 있었지만 동거인의 소중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쫓아낸 녀석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TV를 보며 낄낄대다 잠드는 생활이 반복될 때 새로운 동거충이 나타났다.


녀석은 독수리 오형제보다 더 다부진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긴 더듬이를 가졌으며,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이었다. 처음 녀석을 봤을 때 약간의 충격을 받고 녀석을 박멸하기 위해 책을 들고 녀석을 뒤쫓았지만 녀석은 생각보다 날렵했다. 그렇게 2~3일 정도 내가 방에 돌아왔을 때 내게는 추격전, 녀석은 애완인간과의 산책을 즐겼고, 저 미물이 무슨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며 녀석의 포획 또는 박멸을 포기했다. 신기하게도 그 뒤 녀석은 나를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운 방의 불이 켜지면 어떨 때는 천장에서 그리고 다른 때는 문 뒤에 숨어서 나와의 숨바꼭질을 즐겼으며, 내가 TV를 보고 있을 때면 녀석은 조용히 내 손이 닿지 않는 한쪽 구석에서 더듬이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같이 즐겼다. 내 기억으로 녀석은 슈퍼스타 K를 유독 좋아했던 것 같다.


녀석도 나와의 동거를 즐기는 거 같지만, 나 역시도 녀석과의 동거를 즐겼다.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문 뒤 한쪽 구석에 먹을 것을 조금 놔두고 등교했고, 바퀴벌레인 녀석의 이름을 헤세라고 지어준 뒤 하교하면 가장 먼저 '헤세!!" 하고 녀석을 찾았다. (바퀴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수레바퀴 밑에서의 헤르만 헤세였다..)


녀석과의 동거 시간이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짝사랑하던 그녀를 포함한 다른 직원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했다.

나는 먼저 집에 도착해 홀아비 냄새 제거를 위한 환기를 포함해 사람 사는 집의 모양새로 탈바꿈한 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헤세 에게는 절대 오늘만큼은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를 포함한 일행은 치킨과 맥주를 들고 내 방을 찾았다.

혼자 사는 남자의 방이 신기하다며 여기저기를 쳐다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만간 너와 함께 뒹굴... 뭐.,... 나도 남자니까 이런 생각 할 수 있잖아..

그녀의 샴푸 향과 살짝 뿌린 향수의 향이 치킨의 향에 잠식될 무렵 맥주를 몇 잔 마셨더니 취기가 올랐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그녀를

바라보니 더욱 사랑스러웠고, 상상속 나의 음탕함 이제 위험수위를 넘어 더러움으로 바뀌는 순간 "꺄악!!!" 하고 그녀가 소리쳤다.

헤세 녀석이 치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듯 나를 향한 반가움 반, 치느님에 대한 반가움 반으로 더듬이를 흔들며 기어오는 것이었다.


팡!!


어...


아주 짧은 순간 그녀는 빈 페트병으로 정확하게 헤세를 가격했고, 헤세의 신체 일부는 방바닥에 그리고 일부는 페트병에 붙어 있었다.

심지어 몸이 분리되는 순간에도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녀석을 그녀는 한 번 더 확인 가격해서 가녀린 충생의 종지부를 찍어줬다.

내가 잡으려고 했을 때는 홍길동 같은 녀석이었는데, 그녀 앞에서는 왕꿈틀이 젤리만도 못한 속도를 내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녀와 다른 사람들이 집에 바퀴벌레가 있어!! 라며 놀랄 때 나는 우리 집에 이런 바퀴벌레가 있었다니! 라며 비겁하게 우정 아니 가족을 배신한 패륜아가 되어 헤세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뒤 그녀와 잘 됐으면 좋으련만 그 사건이 발생한 뒤 얼마 후 그녀에게 용감하게 고백하자마자 정확히 2분도 채 되지 않아 차였고 난 마음속으로 "이 바퀴벌레만도 못한 년.." 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바퀴벌레를 볼 때면 나의 동거충 헤세가 생각난다. 물론 바퀴벌레만도 못한 년은 이제 얼굴도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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