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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계장 (PLC장비 제작) 5개월 후기
게시물ID : jobinfo_22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ishmans
추천 : 4
조회수 : 142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2/24 0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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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 남깁니다....ㅋ

지난 글들은 다시 읽어보기도 부끄럽네요.
지난해까지 딱 1년간, 급배수위생설비라는 분야의 일을 배우려고
건설현장 노가다 일을 했는데요.

1. 폭언과 욕설, 고성으로 분풀이를 하는 비인격적 대우..
혹시 땅콩항공 조모씨 녹취음성 들어보셨다면...네..그런 고함 매일 들었습니다.

2. 앞으로의 비전이라면, 제가 숙련공으로 몸값을 높이거나
독립해서 개인사업을 해야 하는데...
소방설비를 하지 않는 한, 급배수위생설비로 상한선은 일당 16만 수준인데다.
제가.. 유흥 접대같은건 정말 죽기보다 하기 싫어서요.
일감 따내는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글렀다 싶었습니다.

지난 일은 여기까지로 요약하구요.


작년 10월경, 지인의 소개로 PLC장비 제작하는 업체에 취업했습니다.
30대 후반에 신입으로 들어가서
갓 30 넘은 과장 대리들에게 혼나면서 일 배우기...
때때로 굴욕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노가다판처럼 폭언 욕설은 없으니 다행이었습니다.

공장 자동화 설비로, 캐비넷?처럼 생긴 판넬 함 안에
PLC로 구동되는 회로를 구성하는, 각종 부품과 케이블을 만들고 조립하는 일이었습니다.
전장 혹은 계장이라 하는데 사실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1. 업무 후기

사실 전장이니 계장이니 하네스니 하는 말도
다닌지 3~4달 돼서야 처음 들어봤습니다.

딱히 업무교육도 없었고, 그냥 드라이버 쥐여주고 이거 조립해라 정도가 전부였고요.
억울한 점이라면.. 진짜 어떻게 하는건지 가르쳐준적도 없이
무작정 시켜놓고 실수하면 화내고.

제품마다 다른 구조나 다른 부품이 들어가니,
작업 내용은 같아도 분명 변수가 생기는데.

이건 뭔가 다른걸까 싶어서 물어보면
- 이거 해 본거잖아요? 이걸 또 물으면 어떡해요? 묻기 전에 제발 생각 좀 하고 물어요 생각 좀. 네?

그래서, 같은 작업이니 비슷하겠거니 하고 동일하게 작업하면
- 이건 다른 거잖아요? 왜 시키지도 않은 걸 멋대로 해요? 제발 사고 치기 전에 물어보고 하시죠?

일하는데 실수나 사고가 없을수 없는건데 (정작 멍청한 실수로 수십 수백만원짜리 부품 태워먹는건 과장 대리들인데;)
사실은 어떤 빌미로든 자기 스트레스 풀려고 짜증내는건
노가다판이나 공장이나 매한가지...

제가 딱히 소질은 없었지만 약 5개월간 드라이버 들고 나댔더니
나름 조립도 케이블 하네스도 익숙해지긴 했습니다.

사실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원체 손으로 뭔가 만드는걸 좋아하기도 했고
열심히 만들다보면 시간도 잘 가고...


2. 비전

이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업계 사정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장이니 계장이니 하는 용어도 알게 돼서 검색도 해보고..

처음 입사할때 사장의 말은 '나이도 있으시니, 좀 배워서 독립해서 차리셔도 되고,
회사가 맘에 들면 평생직장 하셔도 되고' 였는데

가장 절망적인건, 어느 테크를 타건, 야근은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였죠.

사장의 말 '독립해서 차려라'는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땐
내가 어느세월에 경력 쌓고 이론 공부해서 이런 회사를 차리란 말인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전장공 (혹은 계장공)들은 이렇게 회사에서 몇 년 배우다가
독립(?)해서 개인사업자를 내고 일당쟁이 외주인력으로 일을 하더군요 (프리랜서라고도 표현하던..)

이 경우, 판넬 제작과 케이블 하네스를 시키는대로 제작만 하는 수준은 일당 16만,
도면 보고 혼자서 전부 제작이 가능하거나 단독 프로젝트 수행을 맡길수 있는 수준은 최대 일당 30만 수준.

물론 이 경우도 계속해서 일감을 받으려면 '인맥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
(4개월차쯤에 사장도 그러더군요. 일 배우는것보다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러나 건설현장 노가다판만큼 거칠진 않았지만
여기서도.. 화제의 절반은 도박, 스포츠토토, 나머지 절반은 유흥업소 매춘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친하게 지낸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혹은, 이 회사에서 정말로 '평생 직장'처럼 계속 붙어있으면서 진급도 하고...
그렇게 산다 한들, 이 지옥같은 야근에서 벗어날 수 없겠더군요.


3. 근무조건

처음 사장에게 이 회사 얘기 들을땐, '앞으로 주5일로 전환할 생각이다'라는 사장의 말에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입사 초기 근무조건은 주5.5일(토요 격주 휴무), 9 to 6,
포괄연봉제로 야근 및 특근 수당 일절 없음,
야근(8시까지)은 주 2,3회로, 화.목 or 화.수.목 번갈아 함.
단, 일거리가 많을 때는 다소 늘고, 적을 땐 쉼. 이 탄력근무제가 얼마나 거지같은지 미리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ㅋ

12월에 수습 (급여 80%) 끝나고 정직원 전환, 연봉계약을 했습니다.
퇴직금포함(13개월분) 연봉 총액 2925만, 월 실수령 205만.
30대후반에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신입 초봉으로-게다가 일 배우는 입장엔 후하다 생각했죠.


그런데 연말이 되면서부터 주문이 엄청나게 들어오더군요. ㅋㅋㅋㅋ
40대 제작 주문.. 1월초 출하...
12월 내내 야근했습니다. 처음엔 정시퇴근 6시 야근 8시이던것이
야근이 점점 늘고 더 길어지더니 나중에는 9시 10시까지 야근..
1월초에 끝나니까 조금만 더 참아라.
그런데 이 프로젝트 다 끝나가니까 또 주문 들어옴.
60대 제작 주문. 2월말 출하.

진짜 하루하루 지옥같더군요. 끝나지 않는 야근.

와중에 갑작스런 근무시간 변경 공지.
출근시간을 9시에서 8시 30분으로, 퇴근시간을 6시에서 5시 30분으로.
ㅋㅋㅋㅋㅋ 장난하냐 싶더군요. 조삼모사도 이런 조삼모사가 또 있을까.
어차피 야근은 8시 9시 10시까지 할건데 무슨....
이때 크게 실망했던것 같네요.

결국 12월, 1월, 2월 내내
일주일 내내 매일 야근, 혹은 하루 빼고 매일 야근.
근무시간 따져보니 최저임금보다 한참 못 미치는..

그나마 지금은 본사 제작팀에 있으니 망정이지,
곧 현장으로 파견 다니게 되면 주 5.5일도 놀토도 없고
일요일도 출근해서 야근까지.. 주7일이 시작됩니다.
다만 출장비라는게 붙기 때문에 (일당에 사원 2만, 대리 3만, 과장 4만이 붙는)
급여는 다소 늘겠으나... 결국 식대를 이 돈에서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거고.
해외로도 출장을 보내니, 중국으로 중동으로 6개월씩 다녀들 오더군요.

업계 상황에 대한 정보도 구글링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일찍 결혼들 하신거 아니면 앞으로 결혼이나 연애는 꿈도 꾸지 말라고
결혼하신 분들도 이혼 안당하게 조심들 하시라고.
장기간 해외출장에 아내의 외도도 감수하시라고.

마침 지금 썸타는 사람이 있다보니.. 이 상태에서 갑자기 6개월 해외출장 다녀온다면.
아찔했습니다.


여기에 결정타. 과장이 사장과 담판을 했다고 자랑스레 조회시간에 한다는 말이
연일 야근으로 다들 너무 지쳐있으니 좀 줄여달라.
그래서 2개조로 나눠서 야근을 한주씩 번갈아 하자...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조삼모사에서 조사모삼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지.


여튼, 아까 2번에서 얘기였지만.
제가 외주 인력으로 일한다 한들, 1.5공수 받기위해 야근을 해야할테고
이 회사에서 진급하며 계속 다닌들, 이 야근에서 벗어날순 없겠구나 싶더라구요.

이제 2월 말일까지 지금 프로젝트가 끝나면 3월부터는 야근 없다고 하지만
혹시 압니까? 40대 60대에 이어 3월엔 80대 주문 들어올지 ㅋㅋㅋ (이미 그런 징조가..)


4.
약 한달쯤 고민하다, 이건 역시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자가 운전으로 편도 1시간 출퇴근, 조회시간(8시20분) 전에 도착하려면
7시쯤 집을 나서야 하고, 10시까지 야근한다고 10시에 보내주는것도 아니고
청소하고 나와서 또 운전해서 집에 오면 11시 반.
씻고 잠만 자도 8시간 자기 힘들고.
이런 생활에 이론공부는 커녕 자기계발이나 인간관계는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것도 아니고. 알량한 저 장래성 생각하며 버티기엔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차라리 당분간 일당 알바나 하며 자격증이나 따야겠습니다.
(아웃소싱 업체 거쳐 공장 다니는게 시간대비 훨 많이 받겠더군요)


급배수위생설비 1년에 이어
전장공 5개월, 또 포기의 기록입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좋은 경험 했구요.

전에 하던 일 그만두며 가졌던 막연한 환상,
정직하게 땀흘려 노동하는 일은 보람이 있을거라는거...
확실히 깨버렸습니다.
몸 쓰는 일도 마음 고생 없는 일은 없네요.

이제 다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하렵니다.

다들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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