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기획부동산이라는게 있어요.
게시물ID : jobinfo_9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퍄퍄무
추천 : 2
조회수 : 123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18 12:49:59
옵션
  • 외부펌금지
 
 
네, 기나긴 취준생활에 어느 날 한줄기 빛처럼 연락이 와서 면접보고 교육받다가 이틀만에 때려치고 나왔습니다.
직전 회사다니는게 참 개같아서 때려치우고 취준으로 뛰어들었는데 뭐.. 여긴 전쟁터보다 더한 지옥이네요.
다시 또 지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저 같은 피해자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입니다.
취준에 지쳐서 부동산 관련 일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지인분이 공인중개사를 하고 계셔서 미리 배우면서 자격증도 따면 사무실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검색을 엄청 했죠?
잡k리아, 인c루트, 사r인 등을 찾아보면 '부동산'이라는 키워드 하나에도 줄줄 뜨더라구요.
부동산중개업, 부동산임대업, 분양대행업을 하고 있다는 회사 모집요강을 보게 되었어요.
마케팅부, 사무부가 있었는데 저는 그냥 사무부에 지원을 했어요.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면접보라구요.
몇 주만에 온 소식이라 너무 반가워서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어요.
열 두명 정도의 남녀 모두가 제 또래더군요. 20대 초중후반.
면접을 보러 들어가니 분명 사무부에 지원을 했는데,
제 성격이나 이력등을 볼 때 '운영사무부'에 더 어울릴 것 같대요.
모델하우스에 오는 손님들 상담해주는 일을 한다고 해요. 그리고 팀장인 자신을 도와서 많이 보조를 한다고.
그러면서 슬그머니 적게는 200-400, 800-1000 정도 벌 수 있다고... (한달기준)
어, 괜찮은 것 같았어요. 오랜 취준으로 자존감 뚝 떨어졌던 저보고 뭔가 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다 가치를 알아 준 것 같았거든요.
면접 결과는 당일 6시 안으로 발표한대요. 제가 면접 본 시간이 2시인데..
면접 장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집에 가고 있는데 4시 30분쯤 전화가 왔어요. 합격했고, 교육받으러 오시라고.
 
교육을 받으러 갔어요. (까먹을 뻔 했는데 인사팀 그러니까 합격 통보 한 직원분한테서 오고 있냐고 확인전화 왔어요)
제 또래 친구들이 참 많네요. 한 열 다섯 명? 강의실이 가득 찼습니다.
1교시, 점심, 2교시 로 나뉘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교시에는 자기네들이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이윤을 만들고 있고, 어떤 커리큘럼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입지를 다져나가는지.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회사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왜 부동산에 투자를 해야 하느냐, 시행사, 시공사, 신탁사 이 세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아.. 나 괜찮은 회사에 합격했구나. 사기 아니구나."
 
점심 시간이 되자 각각 두명 내지 세명씩 배정받은 부서를 이야기해줍니다.
1본부 2본부 3본부 산하 1부서, 2부서, 3부서 뭐 이렇게 있대요.
근처 식당에서 밥먹으러 가는데 해당 부서 사람들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어요.
 
이어진 2교시 교육. 1교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입니다.
왜 부동산에 투자를 해야하느냐를 세부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안정성, 수익성, 황금성 등등..
돈을 너무 많이 줘서 다단계 같냐며, 자신도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그런 이야기도 하더군요.
정말 괜찮은 회사 같고, 잘 합격 한 것 같고, 앞으로 일 하는게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교육 후 배정받은 부서의 팀장과 인사를 하고 귀가를 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정시 출근해서 정시 퇴근하게 될거래요. 8시 40분까지 오라고 하네요.
 
이튿날, 8시 4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 새벽 6시 30분에 나왔습니다.
가고 있는데 또, 확인전화가 왔어요. 오고계시냐고. 가고 있다고 좀따 보자고 말했어요.
사무실에 올라갔어요.
독서실처럼 파티션으로 칸을 만들어놓은 책상은 매우 좁았고,
개인 컴퓨터 하나 없이 헤드셋 하나와 계산기 처럼 생긴 기계하나가 눈에 띕니다.
그리고 덩그러니 앉아 있는데 책자를 주네요.
처음 들어보는 회사이름의 브로슈어입니다. 
함께 입사한 오빠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처음 들어 본대요. 내가 지원한 회사 이름이 아니고 무슨 부동산이래요.
하, 각자 지원한 회사 이름이 다릅니다. 사무실이 있는데 상호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간판도 없어요.
근데 팀장이 와서 이야기합니다. 어제 교육때 이야기 들었죠? 저희는 브로슈어에 적힌 회사 소속이에요.
쎄한 느낌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9시 정각이 되면 업무 시작을 합니다.
다 각 부서마다 팀장들이 몇 마디씩 이야기를 하고, 끝은 구호로 마무리 합니다.
하나같이 ' 대박, 대박, 대박, 계약, 계약, 계약, 화이팅!' 이런 식입니다.
 
헤드셋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던 저는 눈을 굴리고, 최대한 귀를 열어 주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대리라는 직원이 팀장에게 어제의 통화내역같은 걸 보고 하네요.
전화를 받지 않는 다는 대리의 말에 팀장이 따다다다다다 말했습니다.
"아니, 돈을 벌게 해 준다는 데도 안하실 거냐고 물어봐. 돈 없는게 얼마나 서러워. 하다못해 자식들, 손주들 줄 용돈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자식이 예체능 하고 싶다는데 혹은 유학을 간다는데 돈 없어서 못보내면 그 마음이 또 어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날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이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익성 오피스텔에 대해 쭉쭉 이야기를 들었어요.
1억 2천짜리 오피스텔인데 융자끼고 뭐 얼마얼마에 한달 얼마씩 월세를 받을 수 있다.
돈이 좀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이런 거 투자를 못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려줘야 한다.
예전처럼 은행에 금리가 15% 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천만원을 맞겨놔봤자 얼마 안나온다.
근데 이렇게 부동산에 투자하면 한달에 얼마, 또 한달에 얼마 이런식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데 이게 얼마나 좋으냐.
 
그리고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 노력하기만 하면 한달에 천만원도 우습다.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또 얼마를 벌어간다.
돈 이야기를 엄청 합니다. 자기는 입사 4년 만에 본부장의 자리에 올랐고, 자수성가라고 해도 될 만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꾸만 쎄한 느낌이 불안하게 피어오릅니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근무에 돌입합니다.
저쪽 팀에서는 화이팅! 이라는 구호와 함께 갑자기 사람들이 막 뭔가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인사멘트에요. '안녕하세요~ 월세 받아 보실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 소개해 드릴려고 전화드렸어요~솰랴솰랴'
그제서야 쎄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침에 받은 부동산 물건 교육을 받은 걸 시험치듯이 쓰라고 해서 써내려가고 있는데 앞에 앉은 여직원이 그러네요.
"네~ 안녕하세요 -(수익형 오피스텔 이름)- 입니다. 
대기업 임직원분들 대상으로 월세 받아보시는 수익형 오피스텔 소개해 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하......... 아웃바운드구나.
 
저만치 있는 남직원은 "아~ 어머니 목소리 들어보니까 한 40대 쯤 되시는 것 같은데 맞으세요? 아 50대요? 아 그러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수익성 부동산이라고 들어봤어요? 아, 아니에요. 저 막 장사하려고 전화 돌릴 만큼 한가한 사람 아니구요, 아니에요. 귀찮게 안한다니까. 봐봐요, 요즘같은 시대에 누가 돈을 은행에 넣어둬요? 월세 받는 부동산에 딱 투자를 해놓으면 한달에 못해도 수익률이 8%대가 나오는데 그런 걸 왜 안해요? 아니, 지금 막 팔려고 전화 한게 아니라~ 그냥 여기 와 보시라구요. 네네 여기 지금 xx동, 네네 xx역이에요. 아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데 왜 안해! 몰라서 안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알려주겠다고 전화드린거아니야! (여기서 정말 언성이 높아졌어요, 싸우는 줄)"
청산유수같은 멘트를 날리며 회유도 채찍도 써 가며 반 강제적으로 휴대폰 번호를 받아냅니다.
소름이 끼쳤어요. 속에서 역함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팀장 불러서 하기 싫다고,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니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가시면 될 것 같다고 그러네요. 그래서 나왔어요.
멍청하게 이런 데 걸려서 좋아했던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서 팀장에게 말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집에 올 때까지 내내 울었습니다.
 
공인중개사를 하시는 지인분께 물어보니 기획부동산이라고 하네요.
오피스텔이나 아파트 분양을 위해 하루종일 전화를 돌리는 일을 한다고 해요.
 
처음 입사하고 교육을 받는데 어떤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하는 지 절대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까 생각보다 많네요, 기획부동산이라는게.
저랑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대요.
 
월급도 방식이 두가지가 있는데 기본급 깔고 건당 20, 기본급없이 건당 200 이런 식이라고 해요.
보통 돈을 잘 벌겠다는 욕심에 기본급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기를 쓰고 화를 내 가면서 전화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TM이 나쁘다고 말하려고 이런 글을 쓴 게 아니에요.
내 돈만 갖다바치는 게 아니지 (아 기본급이 없다는 부분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단계랑 뭐가 다른가요?
 
취업 난에 허덕이고 자존감은 매일매일 곤두박질 치다가 결국 지푸라기를 잡았는데 그게 그런 기획부동산이라니.
같은 팀에 배정받았던 오빠에게 "우리 TM하나봐요." 하니까 씁쓸한 얼굴로 그런가보다했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멋 모르는 벌어린친구들이 와서 쉽게 대리나 주임을 달고, 버는 것도 쏠쏠하게 벌어가니까 좋아보이긴 했어요.
 
이렇게 멀뚱히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저를 포함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 이런 시대에, 이런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 깊은 연민이 느껴졌어요. 그냥 서럽네요.
 
어떻게보면 제 경험을 풀어놓은 것을 빙자한 긴 넋두리였는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분이 착찹하네요. 오늘부터 다시 이력서를 써야한다는게.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힘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래요. 힘이 없어서 못내는 게 아니니까.
그저.. 아프지말고 몸 건강히 소원하는 일은 모두 이루기를 바랍니다.
 
 
 
* 요약
 
1. 기획부동산이라는 데가 있다.
2. 종합건설회사, 분양대행업, 시행사, 종합부동산 등의 상호를 달고 있지만 하는 일은 TM
3. 사무직으로 지원해도, 마케팅으로 지원해도 하는 일은 그냥 TM
4. 개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고소득을 표방하지만 기본급이 (거의)없다.
5. 내 돈 안들어가는 다단계
6. 신도시개발, 재개발구역이 넘쳐나는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 성황리에 영업중.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종류가 많다.
7. 구직사이트에 이름만 바뀌어서 같은 내용으로 부동산 관련 공고가 올라온다면 백프로.
 
8. 다른 회사의 월급에 비해 아무조건없이 높은 월급을 주는 곳은 이 세상에 없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