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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남에게 차였어요. 위로가 필요해요.
게시물ID : love_325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차좋아진다
추천 : 4
조회수 : 134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7/18 19: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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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부터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짝사랑 하는 캐릭터에게 마음이 갔어요.
 
글래디에이터에 그 나쁜 황제 있잖아요? 그 황제가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그러잖아요
 
"누난 나를 사랑할게 될거야. 왜냐면 내가 누나를 사랑하니까"
 
저는 그때 중학생이었고 그 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그 대사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 '전망 좋은 방' 이라는 영화에는 주인공한테 차이는 약혼자로 세실이라는 남자가 나와요.
세실이 아주 나쁜 남자는 아니예요. 권위적이고 19세기 영국 귀족의 꼬장꼬장한 면이 남아있지만 세실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주인공을 그렇게 옭아매지는 않을 만큼은 좋은 사람이예요. 그래도 주인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했고, 세실에게 파혼을 선언해요. 저는 그 장면에서 세실이 마구 분노하거나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세실은 그러지 않았어요.
계단에 한번 풀썩 주저앉고는 당신 뜻대로 하겠다고 하고 사라졌어요.
저는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끝내자고.
마음을 달라고 더이상 애원하지 말자고.
 
저는 그때 남자 손도 잡아보지 못한 햇병아리였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마도 제가 계속해서 누군가를 짝사랑 할 운명이라는 걸 그때 이미 알았던 걸까요?
 
 
예전 회사의 직장상사를 좋아했어요.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고
많이 좋아했고
알면 알수록 더 좋아했어요.
 
가우스전자라는 네이버 웹툰 아시나요?
거기에 자기 사수를 좋아하는 남나리라는 캐릭터가 나와요.
나리가 짝사랑하는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런 노력도 안하는데 내가 저 사람을 가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리와 나리가 짝사랑하는 고득점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면 제가 더 기뻤어요. 어느 순간 제가 나리에게 저를 이입하면서 보고 있었어요. 다만 가우스전자는 만화니까 앞으로 나리와 득점이는 잘 되겠죠.
 
근데 저는 그렇지를 못했어요.
그동안에 다른 직원들보다 저를 더 친근하고 편하게 대해주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설렜어요. 그래도 같은 회사니까 감히 더 다가갈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같은 회사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분은 전문직이고 저는 일개 사무원이었거든요.
 
그래두 몇달전에 제가 상사네 동네에 주말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연락했더니 다른 일 보다가고 나와서 밥 사주시고 바래다 주길래 헛된 기대도  해봤어요. 그분이 원래 사람 만나는 자리를 좋아하는 분이지만 그래도 굳이 주말에 일개 직원인 나에게 시간을 내 주다니 어쩌면 나를 회사 사람 이상으로 생각할지 모른다고 설레기도 했어요.
혼자 야근하면서 밥먹기 싫다고 같이 밥먹자고 할때마다 붙잡혀 주길래 그래도 저에게 인간적인 호감은 있을거라고 믿었어요.
제가 손이 큰 남자가 좋다고 했더니 자기는 손이 작아서 어쩌냐고 탄식해서 농담이겠지만 순간 착각할 뻔 했어요.
제가 목소리 좋은 남자가 좋다고 짝사랑남의 목소리는 낮고 울림이 좋은 좋은 목소리라는 말했을 때, 사람들은 목소리가 낮으면 좋은 목소리라고 착간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게 철벽인가? 하고 주변에 물어보니 쑥쓰러워서 그럴 수 있다는 말에 제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했어요.
 
 
 
짝사랑 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저에게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았는데 혼자만의 기대로 좋아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했어요.
사실 전에도 짝사랑 해봤는데 똑같은 실수를 이 나이 먹고도 해버렸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배우는 것도 없을까요 어쩜 저는.
 
이직하게 되면서는 제가 그 상사를 좋아하는 걸 아는 다른 상사가 잘해보라고 하길래 다른 분이 보기에도 나와 저분이 잘 어울리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근 들떴어요.
새 회사 오고선 첫주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분께 전화로 카톡으로 상담드리곤 했어요.
카톡에 답장을 해주시긴 했지만 '아 이게 철벽이구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다를거라고,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우겨봤어요.
그러다 어제 제가 실수를 했어요.
제 고민 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전 회사에서 퇴직금도 받았으니 보답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본인이 해준것도 없는데 뭘 받을 것도 없다고,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보는 데에 보태라고 하더라구요.
네. 저 뮤지컬 좋아해요.
뮤지컬 좋아해서 뮤지컬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그 분이 좋아할만한 뮤지컬은 뭘지 궁리할 만큼 뮤지컬 좋아해요.
결국은 다음달에 전 회사 식구들과 함께 밥이나 먹자고, 제가 놓고 간 물건도 있으니 그거나 찾을 겸 해서 오라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시간 되면 알려주겠다고.....
근데 그런 날이 오긴 할까요? 제 마음 이미 다 들켰고 저를 불편해 할 텐데 저를 부르고 싶어할까요?
더 들이대지 않았다면 제 맘 완전히 들킬 일도 없었을테고 그분께 그냥 예전에 같이 일한, 편했던 직원으로 남았을텐데 귀찮은 사람이 되었어요.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제가 전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제 마음을 들켰을 수 있고 그런 제가 부담스러워서 저의 이직에 내심 안심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제 그만둔다고 맘은 먹었는데 하루종일 심장이 아프고 너무 힘들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혀서 마음이 덜 아플 줄 알았는데 예전과 똑같이 아픈 걸 보면 제가 정말 그분을 많이 좋아하기는 했나봐요.
 
그래도 저 민망하지 않게 끝까지 정중히 거절해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사람을 좋아했던 것에 후회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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