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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해주는 예쁜 남자
게시물ID : love_426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란.
추천 : 2
조회수 : 8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22 21: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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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가 입으로 쏙 들어온다. 나는 풋풋한 즙이 감긴 오이를 씹는다.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청소기를 밀며 가는 내 뒤를 그가 졸래졸래 쫒으며 묻는다.

"오이 다 먹었어?"

내가 말없이 고개만 까딱이니 이번에는 토마토를 갖다댄다. 

감기몸살로 어제, 오늘 누워만 있으니 좀이 쑤셔서 청소기를 돌렸다. 몸도 아픈데 무슨 청소냐며 걱정어린 타박이 날아온다. 

"살만하니까 하나보지. 멀쩡하다 멀쩡혀." 
하고는 한 쪽 다리를 들고 엉덩이랑 같이 좌우로 흔들었다.

내 전용 댄스로 기분이 좋을 때도 안좋을 때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무 때고 추는 춤이다. 아니, '몸짓'인가. 나의 전용 몸짓으로 괜찮다고 파닥거렸다.

그는 냉장고 제일 아래 채소칸에서 토마토 하나, 오이 하나를 꺼내 자르고, 자른 오이 한 토막을 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수분을 보충해야 돼요."


홍대 앞 반지하는 자취 생활을 시작한 첫 집이었다. 우리는 같은 회사를 다녔고 '남몰래 사내커플' 이었다. (나중에 밝히긴 했다)

그가 회사를 관두고 백수가 되서 우리 집으로 출근할 때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작은 반지하는 그가 차린 저녁 밥 냄새로 꽉 찼었다. 김치찌개 하나 하는데 3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고 제법 한다.)

마음이 중요한거다. 3시간이고 몇시간이고 걸려도 해주겠다는 마음. 맛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맛과 속도는 아무래도 내가 낫지 싶다.

우리는 같이 살면서 집안일의 분담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이건 사람 커플마다 다르다) 자연스레 서로가 잘하는 것을 맡아서 했고, 그는 청소를, 그 중에서도 개수대 청소를 도맡았다. 

배수구에 음식물이 차면 음식물쓰레기봉투에 털어서 버리고 물로 헹궜는데, 이 친구는 음식물쓰레기를 비운 후 거름통을 반짝반짝 광 나게 씻어 말린다. 주부9단의 포스를 느꼈다.

아픈 이틀동안 밥을 못 챙겨줘서 조금 미안하다.  '밥은 여자가 해야된다' 는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보다 시간에 자유롭고 덜 피곤해서 그렇다. 나는 지금 백수, 생활인이니까.

"미안하다! 밥도 못 챙겨주고 혼자 힘들었지." 하니까 얼른 낫기나 하란다.

나는 식탁에 수저를 놓고 밥을 퍼담는 네 뒷모습을 본다. 엉덩이가 축 처진 추리닝을 토닥토닥 해본다.

출처 https://m.blog.naver.com/tear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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