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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2년 반만에 다시 마주쳤습니다.
게시물ID : love_493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뭐닭
추천 : 1
조회수 : 551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7/22 21: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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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냥 어디다가든 말하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20년 1월에 헤어지고 2년 반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 사이 지인 결혼식에서 두 번 얼굴 보긴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지인과 함께 식사하면서 만났네요.

상대는 지금 연애중이고, 저도 상대가 새로운 사람과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묻어두었던 추억도 다시 이야기 나누니 생생해지더군요.

그냥 그렇다구요.

 

저는 얼마전에 다른 연애가 끝나고
스스로에게 좀 집중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시도하던 중

랜덤하게 주어지는 키워드에 1주일 마다 짧은 글을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처음으로 주어진 키워드가 '강남역'이었습니다.

사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앉아서 끄적이다보니 전혀 다른 글이 나왔네요.

그녀를 다시 만난게 참 큰일이었나봐요.

누가 좀 읽어줬으면 싶어서 남기고 갑니다.

 

여러분은 뜨겁게 사랑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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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등대>


 어느 밤, 초록빛을 내는 등대가 강남역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작정 초록 등대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날을 잡아 길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강남역에 도착하지 못했다. 분명 그곳을 향하며 출발했는데. 가본 적도 있고, 가는 방법도 알고, 가서 할 말도 있었는데. 이리저리 얽힌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지하철역의 이름을 하나씩 소리내어 읽다 보면 차마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역이 나왔고, 차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마주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없는 식당들과 변해버린 거리였지만 출구를 나서면 왠지 네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거리를 둘러보았다.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초록 등대와 강남역을 되뇌이며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묻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초록 등대를 찾아 강남역으로 가는 중이라고, 눈에서 나오는 물은 그냥 먼지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우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도 말이지 습관처럼 이번 역에서는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니까. 여기였으니까.


 그렇게 내리는 역마다 우리가 걸었던 길과 함께했던 시간을 마주했다. 기억이 오버랩된 거리는 손에 남은 습관을 간질이고, 그 날의 웃음을 다시 불러왔다. 그 맛이 쓴 것은 아마도 혼자 그것을 음미하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너도.


 그러니까 내가 길을 잃은 것은 네 탓이 크다. 며칠 전 우연히 너를 마주한 탓일 게다. 그 짧은 순간 너의 주머니에서 조금 새어 나온 미련의 조각을 발견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그 주머니가 텅 비어 새로운 사람으로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탓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만큼은 너의 생에 잊지 못할 기억이면 좋겠다고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마음을 절대로 네가 볼 수 없는 곳에 이렇게 쏟아 놓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 길을 잃고 말았지만 언젠가 다시 초록 등대로 갈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는 길을 잃은 자들을 보듬어주려는 친절한 안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처럼 길 잃은 자들이 모여 잠시 서로의 이야기에 몸을 녹여 갈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때는 지하철에서 길을 잃지 않고, 웃으며 지나갈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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