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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게시물ID : lovestory_394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라즈마
추천 : 5
조회수 : 90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5 19:54:11

1944년 6월 6일.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 알려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개시됩니다.

일명 D- Day. 작전명 OverLord (대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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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천여 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1백만 명의 병력이 상륙한 거대한 작전입니다.

 

이 작전에 의해 독일의 서쪽에 연합군이 상륙하였고 서부전선이 열렸습니다.

이미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이 사투 끝에 독일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였고,

양쪽 전선에선 연합군과 소련군이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합니다.

 

드골 장군이 이끌던 자유프랑스군과 연합군은 빠르게 프랑스를 수복하기 시작하였고,

1944년 8월 24일 밤. 르클레르 장군의 제2기갑사단이 파리에 진입하여

프랑스는 5년간의 독일 점령을 벗어납니다.

 

5년간 2차대전이라는 격동의 중심에 있었던 파리가

전쟁의 상처를 적게 입고 오늘날까지 존속할 수 있게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침략국인 독일의 마지막 군정장관이었습니다. (왜정시절 총독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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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rich von Choltitz - 디트리히 폰 콜티츠 중장.

 

2차대전 발발 당시 프랑스는 제3공화국 체제였습니다.

당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국가를 분열에 이르게 할 정도로 극심하였고

이로 인하여 프랑스라는 강대국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독일 제3제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고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국토의 절반을 독일의 통치권 하에 넘겨줍니다.

(나머지 절반은 페탱장군이 이끄는 비씨정부 관할)

독일은 프랑스 수도인 파리에 군정장관을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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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24일의 사진입니다.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수뇌부가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 앞을 방문하였습니다.

 

전쟁이 거듭되면서 독일군은 점점 불리해져 갔고

막바지인 1944년 봄에 독일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소장을,

파리 담당 군정장관으로 진급 및 발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몇개월 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하여

독일군은 프랑스에서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 히틀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각지의 부대는 죽든말든 전선을 고수할 것과, 후퇴할 경우 해당 지역은 반드시 박살낼 것이란 명령입니다.

 

프랑스에 주둔한 콜티츠 중장에게도 같은 명령이 내려집니다.

'후퇴할 시 파리의 모든 건물, 모든 유적들을 파괴하라! 절대로 온전하게 넘겨주지 마라!'

당시 독일은 나치와 히틀러의 독재 체제였지만,

독일군 내부에는 영혼까지 바치지 않은 군인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히믈러나 괴링과 같은 악독한 자들이 있던 반면에,

영화 '발키리'에 등장한 장교들과 같이 최소한의 인간성만은 간직한 군인들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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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하인리히 히믈러, 오른쪽은 헤르만 괴링입니다.

히믈러는 나치 친위대인 SS를 이끌었고, 괴링은 독일 공군의 수장이었습니다.

악독하기로는 최고로 이름난 자들이었고,

히믈러는 체포직전 자살, 괴링은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직전에 자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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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키리의 주인공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입니다.

암살이 실패한 이후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총살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총살당한 골목에는 비석이 세워져, 지금도 그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콜티츠 중장은 굉장한 고민에 빠졌다 합니다.

나치는 독일의 정권이었고 히틀러는 독일의 총수이며 자신은 그 휘하의 군인인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지요.

 

오랜 고민 끝에 콜티츠 중장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 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프로이센 군인으로서 파리를 파괴하란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꽤 많은 장군들이 나치를 거부하고 프로이센을 칭하였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9번에 걸쳐서 히틀러는 파리 군정사령부에 전화를 걸어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라고 악을 썼지만,

콜티츠 중장은 끝내 이를 무시하고 연합군에게 항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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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26일의 사진입니다.

드골 장군 (키다리) 이 이끄는 자유프랑스 정부가 파리에 입성하면서

대대적인 전승행사를 개최한 사진입니다.

콜티츠 장군은 후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3년형을 언도받고 복역, 1947년에 석방됩니다.

이후 바덴-뷔템베르크 지방에 정착하였고, 전쟁중 얻은 지병으로 투병하던 중에

프랑스 점령지였던 바덴-바덴 시에서 1966년에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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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티츠 장군은 독일해군의 되니츠 제독과 더불어

연합군 쪽에서조차 존경받은 장군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고관들이 모여서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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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 속에서

작게나마 인간성을 유지하려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

파리라는 도시가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던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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