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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라고 불리는 목사
게시물ID : lovestory_464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크숟가락
추천 : 7
조회수 : 8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02 14:04:28

목사가 쪽방 동네 거지 왕초

15년간 도시 빈민 위해 헌신한 김흥용 목사…교회 개척해 사역 계속

김 목사가 시작한 목욕은 빈민들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말끔한 사람은 길에서 손을 벌려도 돈을 얻을 수 없었다. 노동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 목사는 손수레를 한 대 사서 쪽방 동네 사람들과 함께 폐지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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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용 목사는 15년간 쪽방 동네 주민들을 돌보며 살았다. 
김 목사가 직접 부딪혀 만든 목욕탕과 체력 단련 공간 등은 정부 복지 센터의 모델이 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몸을 씻고 싶은 마음, 김흥용 목사는 이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안다. 

10대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무작정 왔다가 돈과 머물 곳이 없어 길에서 먹을 것을 구걸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위생과 피부병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목사는 무료 목욕탕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1997년 남산 아래 나사로의 집을 세워 경제 약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욕을 중요하게 여겼고, 

2000년에는 무료 목욕탕을 짓기에 이르렀다.



홀로 시작한 봉사, 전국 쪽방 동네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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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목사는 쪽방 동네 주민들을 직접 씻어 주었다. 
2000년부터는 무료 목욕탕을 마련해 쪽방 주민이 와서 씻을 수 있게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김 목사가 시작한 목욕은 빈민들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말끔한 사람은 길에서 손을 벌려도 돈을 얻을 수 없었다. 노동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 목사는 손수레를 한 대 사서 쪽방 동네 사람들과 함께 폐지를 수집했다.


김 목사는 맨몸으로 부딪혀 쪽방 동네와 사회가 통하는 길을 내고 닦았다. 

김 목사가 만든 나사로의 집은 정부 복지 기관의 모델이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쪽방 동네를 돕는 복지 시설 7개가 세워졌고, 다른 지역에도 복지 시설이 들어섰다.



혹사로 상한 몸, 그래도 사역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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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방 동네 사람들 밥은 나눔의 쌀독이 책임진다. 나눔의 쌀독에 쌀을 두고 가면 쪽방 동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김 목사가 나눔의 쌀독 옆에서 자세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쪽방 동네 환경은 개선됐지만, 김 목사 건강은 악화됐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탓이다. 

김 목사는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 신장이 전체 1/3만 남았다. 위암으로 위도 떼어냈다. 

뇌졸중 병력 때문에 가끔 집을 찾지 못하는 때도 있어 집 주소가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닌다.


74세 작은 노인은 그래도 여전히 '왕초'라 불린다. 

바람에 날아갈 듯 여윈 몸이지만, 일할 때만은 장사 같은 힘이 나온다 하여 얻은 별명이다.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제목이 <쪽방 동네 거지 왕초>로 결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현재 다른 봉사자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뒤로 물러났다. 대신 조만간에 쪽방 동네서 다시 교회를 열 계획이다. 

김 목사가 나사로의집교회를 개척했으나, 

그가 아파서 쉬는 동안 쪽방 동네 사역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바람에 교회가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용산 복지 센터 3층에 교회를 열려고 합니다." 김 목사 얼굴은 새로운 사역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http://well.hani.co.kr/117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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