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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의 눈에서는 푸른 잉크가 쏟아졌다
게시물ID : lovestory_816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4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29 22:53:36
사진 출처 : http://lalgibi.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D_Xc5SOfTWI




1.jpg

신철규밤은 부드러워

 

 

 

여섯 번째 손가락이 돋아날 것 같은 저녁이다

구름이 제 몸을 떼어 공중에 징검다리를 놓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시소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걸어갔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대고 한참을 울었다

너의 눈빛은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지고

너의 눈에서는 푸른 잉크가 쏟아졌다

 

모랫더미 옆 소꿉놀이 세간들

두꺼비집 위에 찍힌선명한 손바닥 자국

 

조심조심 손을 집어넣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온기

손을 빼자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내 손이 너무 커버린 것이다

 

어제는 서로에게 몸을 주고 마음을 얻었다

오늘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몸을 잃는다

 

사람들은 벽 속에 비밀을 숨긴다

편지반지손가락머리카락검은 고양이

벽 속에는 썩지 않을 약속들과 파릇파릇한 거짓들이 자라난다

 

거짓말로 피라미드를 쌓고

거짓말로 하늘에 별을 따고

거짓말로 너를 우주로 날려 보낸다

 

유성이 떨어지는 동안 우리의 입맞춤도 사막 어딘가에 묻히겠지

 

펭귄들은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사막을 꿈꾸고 있을까

사막여우의 꿈속에는 빙하가 보일까

 

오늘도 어디선가 두 개의 별이 부딪혀 하나가 된다







2.jpg

정채원, Once in a blue moon

 

 

 

그곳에 가면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뜬다네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은 푸른 달이지

구름 속으로 하마가 날아다니고

땅위에 내려앉지 못하던 발 없는 새들이

숲속에서 마지막 춤을 춘다는 밤

소식 알 길 없던 헤어진 연인들이

달나라에서 문자를 보내오고

사과꽃이 한꺼번에 후드득 진다네

영문도 모르는 눈먼 새는 푸드득

암청 하늘로 황급히 날아가고

다음날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다네

푸른 달 아래 사과꽃 밟으며

우린 누구나 죄인의 얼굴이 되겠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무염시태(無染始胎)를 꿈꾸기도 하지만

나는 장미보다 가시의 정원을 꿈꾸네

모든 상처 간신히 아문 뒤에 감기로 죽고 싶지는 않다네

죽음이 살갗 밖으로 푸르스름 혈관처럼 내비치는 밤

달빛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색소폰을 불며

비소 먹은 듯 그렇게 푸른 꽃을 피우고 싶네






3.jpg

이우성보름달을 빠져 나오는 저 사람

 

 

 

밤의 오토바이를 알고 있다

휘파람의 속도로 유연하게

숫자를 비행하는 풍선

 

할머니는 어두워졌고 벌써 세 번째 인사를 건넨다

언제 왔어

그녀는 언제부터 골목을 버리기 시작했을까

 

문 닫는 슈퍼마켓 유리 저편

과자는 지루한 먼지를 덮고 잠이 들었다

방바닥에 혼자 앉아 벽을 바라보는 동안

그녀의 낮이 어두워지듯

새들도 밤의 눈썹을 잊고

날다 돌아볼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달의 어느 모서리를 싣고

가로등 빛을 타넘으며 가는

저 분명한 오토바이를 붙들지 못한다

걸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손과 손 사이로 하현과 그믐 빠져나가는 소리

 

언제 왔어

멍하니 떠 있던 이파리 하나

신발을 벗고 내려 내려와

정수리에 앉는다

높이 두둥실 날아오를 차례







4.jpg

이문경마네킹의 거리

 

 

 

마네킹의 얼굴에서는 칼날의 냄새가 난다

눈 내리는 강남역 새벽 한 시

연등제에 걸어놓은 종이꽃처럼

개성 다른 옷차림의 마네킹들 흩어지기 시작한다

억제된 감정과 눈물을 어둠 속에 풀어놓고

아이라인 번진 눈가 마르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택시를 부르고

보도블록 틈에 빠진 하이힐 굽을 빼다가 눈물을 흘린다

그녀도 안다 하이힐 때문에 자신이 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울음에 다른 누군가의 울음이 그친다

 

지붕에 불을 켠 택시가 눈발을 헤치고 달려온다

이제는 덧난 상처에 흰 붕대를 각자 싸맬 차례다

집이 먼 순서대로 올라탄 사람을 싣고

이마까지 붉어진 얼굴로 택시는 사라져가고

마네킹은 쇼윈도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투명한 가격표를 목에 걸고 가장 자신 있는 포즈로

 

일요일 아침

지난밤의 구토와 욕설그리고 욕망으로 조금씩 휘어지던

평균 나이 25세의 거리는

불안과 불균형으로 조금씩 균형을 잡아간다






5.jpg

윤영림너에게서 걸어나와

 

 

 

가자어디로든 가자

너에게서 걸어 나왔으니 망설이지 말고 가자

미련 없이 가자

가장 나다운 것은 너에게서 걸어 나오는 일

네 몸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다

너에게서 밀려나니 허공이다

그래도 나은 것이 있다면

매달려야 한다는 것

몸부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질적 몽상의 폭발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여력을 보라

너로부터 걸어 나온 나를 보라

저절로 걸어 나와 내가 된 나를 보라

 

가자어디로든 다시 가자

너에게서 걸어 나왔으니 멈추지 말고 가자

어느 방식으로든 멈추지 않고 가려는 것

상처의 다리 이끌고

가만가만 흘러가는 나를 보라

울음이 꽉 차 올라 있는 나를 보라

몇 겹의 눈물 낙과처럼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간다

나의 귀환에 의무를 느끼며

너로부터 걸어 나온 성소 같은 곳으로

여한 없이 가려는 것이다

 

누구든신전으로 가는 나를 맘껏 우러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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