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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게시물ID : lovestory_835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0/07 19:31:23

사진 출처 : http://agnesmelanie.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2RfmYYb1XOA





1.jpg

이진명무늬들은 빈집에서

 

 

 

언덕에서 한 빈집을 내려다보았다

빈집에는

무언가 엷디엷은 것이 사는 듯했다

무늬들이다

사람들이 제 것인 줄 모르고 버리고 간

심심한 날들의 벗은 마음

아무 쓸모없는 줄 알고 떼어놓고 간

심심한 날들의 수없이 그린 생각

무늬들은 제 스스로 엷디엷은 몸뚱이를 얻어

빈집의 문을 열고 닫는다

너무 엷디엷은 제 몸뚱이를 겹쳐

빈집을 꾸민다

때로 서로 부딪치며

빈집을 이겨낸다

언덕 아래 빈집

늦은 햇살이 단정히 모여든 그 집에는

무늬들이 매만지는 세상 이미 오랬다







2.jpg

최영철, 21세기 임명장

 

 

 

100년 동안 너의 복무를 허락한다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너에게 사령을 내리는

저 근엄한 어깨가 떨고 있지

흠흠 헛기침을 해대며

넥타이 졸라매는 그 손길 파리하지

우렁우렁 뭐라 달변을 늘어놓는

햇살들의 잔기침

너무 치닫지 말기 바란다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기 바란다

더 이상 길을 내고

다리를 올리지 말기 바란다

길의 끝 다리 뻗은 자리

수렁에 닿지 말기 바란다

이미 쌓은 모래성

아슬한 낭떠러지가 되었구나

너무 높이 남긴 탑

허물고 가야겠구나

너무 분명하게 써놓은 약속

지우고 가야겠구나

너무 가득 차오른 불길한 아침

등지고 가야겠구나

100년 후

여기에 기록할 아무 공적이 없기를

잠시 떠맡은 해 별 풀 달

그냥 그 자리 둥실 떠 있기를







3.jpg

김경미식사법

 

 

 

콩나물처럼 끝가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4.png

정호승내 그림자에게

 

 

 

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다

어둠과 어둠 속으로만 떠돌던 나를

그래도 절뚝거리며 따라와주어서 고맙다

나 대신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일과

나 대신 군홧발에 짓이겨진 일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가정법원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너 혼자 울면서 재판 받게 한 일 또한 미안하지만

이제 등에 진 짐은 다 버리고

신발도 지갑마저도 다 던져버리고

가볍게 길을 떠나라

그동안 너는 밥값도 내지 않고 내 밥을 먹었으나

이제 와서 내가 밥값은 받아서 무엇하겠니

굳이 눈물 흘릴 필요는 없다

뒤돌아서서 손 흔들지 말고

가라

인간이 사는 곳보다

새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어린 나뭇가지에서 어린 나뭇가지로 날아다니는

한마리 새의 그림자가 돼라







5.png

이동백

 

 

 

이윽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지상의 아랫도리가

버티다 못해 젖어들고

 

구름이

승천의 길목에서

목을 꺾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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