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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3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21 19:35:22

사진 출처 : https://liquidtearss.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RGwVAec_2mE





1.jpg

문태준백년

 

 

 

와병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서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 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 해놓은

백년이라는 글씨

 

저 백년을 함께 베고 살다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끙끙 앓고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백년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백년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 서로 흘러가자던 백년이라는 말

 

와병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2.jpg

문정희먼 길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 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 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3.jpg

이생진영혼은 싫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긴 세월

긴 시를 쓴 사람이다

너는 날 만나기 위해

자갈밭에 앉은 여인들과 함께

내가 물고 늘어질

주낙낚시에 미끼 꿰고 있었는가

나를 낚기 위해

너의 영혼을 꿰고 있었는가

영혼의 미끼는 싫다

살아 있는 육체로 오라







4.jpg

장석남배를 매며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5.jpg

오세영바닷가에서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딘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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