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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기억 속의 설날풍경...
게시물ID : lovestory_847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규니스피아(가입:2018-01-22 방문:8)
추천 : 1
조회수 : 2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2/14 15: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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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이 오면......      

  해마다 새해가 되면 달력에서 설연휴가 언제인지, 또 며칠이나 쉬는지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설날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어 좋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그냥 무덤덤해져 간다. 음... 이번에는 4일 밖에 안 노는가? 연휴 때 뭘 하며 시간 보내지?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된다. 명절이라고 집 떠나 지내는 아들이 귀향대열에 끼어 내려오겠다. 고속도로 정체뉴스를 보며 전에는 별 생각없이 보았는데... 이제는 귀향전쟁이 내 관심사가 되어버렸으니...
  
  요즘은 설날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우리에게  풍요로운 마음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기분이 든다.

  내가 어릴 적 자란 곳이 대도시긴 했지만,여느 시골 동네와 별다르지 않았다. 어디서나 쉽게 초가집을 볼 수 있었고 보리밭이나 배추밭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래서 나비도 날아다니고 참새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그런 동네였다.

  이맘때가 되면 어린 우리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달력을 들여다본다. 기다리던 설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 찬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아침에 동생과 나는 누나와 함께 엄마를 따라 강정과 가래떡을 만들러 집을 나섰다. 시장 근처의 공터에는 벌써 강정을 만들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가져온 쌀 바가지를 구불구불 길게 늘어져 있는 줄 끝에다 붙여놓았다. 그 긴 쌀 바가지 줄을 따라 가면 얼굴이 시커멓게 생기고 턱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아저씨가 앉아 튀밥 튀기는 기계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장작불로 튀밥 기계를 가열시키다가 다 되었다 싶으면 커다란 망태기를 기계의 주둥이에 갖다대었다. 그러면 지켜보던 아이들은 양 검지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꼭 막고 곧 터져 나올 "뻥!" 하고 천둥 치는 폭음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튀밥 기계의 소리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깜짝 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집에 사는 친구 원이가 데리고 온 강아지 순돌이도 소리에 놀라 깨갱거리며 달아나버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자욱하게 공터를 휘감았다. 그리고 나면 우리 쌀 바가지는 또 한 칸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튀겨진 튀밥은 옆에서 강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의 부인인가 보았다. 어린 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가 쌀 튀밥을 커다란 솥에다 넣고 뜨겁게 녹인 엿뭇을 붓고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잘 섞여진 튀밥을 네모 반듯한 판에다 쏟아 붓고 둥그런 밀대로 납작하게 밀었다. 튀밥들은 끈적끈적한 엿에 달라붙어 네모반듯한 커다란 강정으로 변했다.

  다 밀고난 아주머니는 정육점에서나 볼 법한 날이 시퍼런 칼로 튀밥 위에다 쭉쭉 금을 그었다. 그러면 손바닥만한 강정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대개는 그냥 쌀 튀밥으로만 하지만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콩이나 땅콩을 넣고 강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깨강정 같은 한번 먹어보기도 힘든 귀한 강정을 만드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이런 깨강정은 당시 잘 살았던 큰집에 가서나 먹어볼 수가 있었다.

  엄마는 강정 만드는 일을 누나에게 맡기고 시장으로 가래떡을 만들러 갔다. 동생과 나는 동네 친구인 원이와 함께 구슬따먹기를 했다. 항상 주머니에 몇 개씩 가지고 다니는 구슬이라 우리는 만나면 구슬따먹기를 하곤 했다. 나는 별로 따는 데에는 실력이 없었다.

  누나는 뻥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우리 쌀 바가지를 한 칸씩 옮기며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설 전날 저녁에는 온 식구가 설빔을 장만하러 시장으로 갔다. 평소에 옷이나 신발을 사지 못 하기 때문에 설이나 추석이 되어야만 새옷을 입어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새옷을 입는 명절이 우리들은 기다려지는지도 몰랐다. 이런 날이면 택시를 타고 좀 큰 시장으로 갔다. 주로 서문시장이나 팔달시장에 많이 갔었다. 어둠이 내려 컴컴한 시장의 옷가게들은 노란 알전구를 켜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아버지는 동생과 누나의 손을 붙들고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옷을 사러 다녔다.

  그때는 왜 꼭 내 몸보다 더 큰 옷을 사라고만 하는지 불만이었다. 마치 내가 마대자루 속에 들어 있는 마당 빗자루 같은 모습이었는데도 아버지와 엄마는 잘 어울린다며 헐렁한 돕바를 사라고 했다. 동생도 자기보다 한 치수 더 큰 옷을 샀다. 그러나 몇 살 더 먹은 누나는 꼭 고집을 피워 자기가 원하는 옷을 샀다. 설빔은 우리들에게만 있었다. 엄마나 아버지는 언제나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설날을 맞이했다.

  설날 아침의 마당에는 복조리가 던져져 있었다. 누가 새벽같이 복조리를 대문 위로 던져 넣은 것이었다. 어린 나는 그 복조리가 왜 우리 집 마당에 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그 복조리를 던진 사람이 복채를 받으러 온다는 것을 알았다. 주로 고학생들이 학비 마련을 위해 복조리 장사를 했었는데, 나중에는 말 그대로 장사꾼들이 복조리를 던져넣는 일이 많아져서 사람들은 복조리를 사지 않게 되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세수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으면 아버지와 엄마는 안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년에 두 번, 아니 제사 때도 입는 한복을 입고  아랫목에 앉아 세배를 재촉했다. 어서 세배하고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배를 하고나면 기분좋은 시간인 세뱃돈 받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날만 구경할 수 있는 빳빳한 지폐를 한 장씩 나누어주며 웃던 아버지의 그 얼굴에 흐르던 미소가 이젠 우리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내 얼굴에서도 그려지고 있을까?

  봉덕동에 있는 제일 큰집을 시작으로 마지막 큰집이 있는 침산동까지 온종일 네 군데를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내야 했지만 설날만큼은 세뱃돈 받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들거나 지겨운 줄을 몰랐다. 마지막 큰집에 와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내 주머니에는 빳빳한 세뱃돈들이 차곡차곡  접혀져 두둑하니 기분이 좋았다. 동네 아이들은 세뱃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자랑을 하기도 했다. 누가 최신형 권총 장난감을 샀다며 자랑하면 우리는 너나 없이 문방구로 몰려가 장난감을 샀다. 대목을 만난 문방구 진열장에는 아이들의 눈을 혹하게 할만한 갖가지 장난감들이 늘려져 있었다. 세뱃돈 함부로 쓴다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새로운 장난감을 사는 어린 나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설날이 한 해에 서너 번씩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물자가 모자라던 시절,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의 설날은 우리 모두에게 기대되는 날이었다. 그날 만큼은 모두가 마음이 풍요롭고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내일이 설날인데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처럼 기다리는 마음도 없다. 이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설날이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닌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일까? 설빔이라고 할 것도 없다. 평소에 새 옷을 사 입으니까 말이다. 강정도 하지 않고 필요하면 사서 먹으면 된다. 떡국도 마찬가지다. 차례를 멀리 해외여행가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의 조상님들 차례상 받으려면 비행기타고 가야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해보았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 땅에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후손들을찾아서...

  설날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나도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갈 것이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곤 한다. 설날에 가족들이 모이면 가끔 어릴 적 설날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면 모두 지나간 그 겨울날의 추억을 떠올리려 애를 쓰며 이제 흰 머리카락에 주름살 짙어진 노모가 부쳐준 부추 부침개에다 수줏잔을 기울이겠지.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할아버지가 된 나의 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이 재미 없어하는 옛날 설 이야기를 또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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