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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그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47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2/19 17:40:54
사진 출처 : https://athinaslittleworld.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kXq1X8yNhCA




1.jpg

양정자종이 비행기

 

 

 

아침마다 보충수업 끝난 후 화단 앞을 걸어가노라면

화단에 여기저기 하얗게 떨어져 있는 종이 비행기들

몇개 주워 유심히 살펴보니

방금 내가 수업한 프린트 교재도 있지 않은가

얼마나 공부에 지긋지긋 염증났으면

수업 끝나자마자

저렇게 미련없이 날려버릴까

부러진 아이들의 상한 날개

추락한 아이들의 꿈을 보는 것 같아 한없이 애처로운

저 종이 비행기비행기들







2.jpg

문인수

 

 

 

나는 그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 양손에 다가 실타래의 한쪽을 걸고

그걸 또 당신 쪽으로 마저 다 감았을 때

나는 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밤 깊어 더 낮선 객지에서 젖은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감기는 빗소리







3.jpg

정희성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하는 그 애의 말 한 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4.jpg

이기홍비가 호수를 때릴 때

 

 

 

문득 보았다

고요하던 호수가 징처럼 흐느끼는 것을

비 맞으며 호수는

비애를 가득히 밀어내고 있었다

비 그치자

징은 사라지고 호수는 넓고 깊어졌다

평평한 수면 속 푸른 핏줄이 비친다

비바람에 쓰러졌던 풀잎들도 호수가 일으킨다

 

어머니에게서 징들이 사라진 건,

이웃집 빨랫감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국수 반죽을 밀다 그런 줄 알았다

젊어서 네 아버지를 여의고부터

가슴속에서 종종 징이 울리더라

그래서 그 징을 저 호수에 버렸단다

우기 동안 어머니가 징소리를 견딜 때까지

나는 왜 아무것도 듣지 못했나

풀잎들이 다시 바람에 씻긴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 때

젖어들며 나는

가만히 엿듣는다

호수 가득한 당신의 징소리를







5.jpg

장이엽모서리

 

 

 

모서리라는 말은

보이는 것에 대한 한계점이다

 

벽과 벽이 만나는 경계여서

내 눈이 다른 곳의 사물과 소통하지 못할 때

기어이 돌아가서야 만날 수 있는 미래다

 

다면체의 전개도를 펼치자

나는 종선(從船)을 탄 어부가 되어

어스름한 저녁바다로 밀려간다

출렁이는 잔물결너머

아득한 수평선이 어둠에 묻혀 가는데

날렵한 각도 앞에서 머뭇거릴 때보다

숨겨진 비밀에 콩닥이던 가슴보다

좀 더 낯선 두려움과 통증이 정수리로 쏠리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나려하는가

 

정면은 시선이 닿는 곳에서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모서리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하기

뒤돌아보기 없기

헛걸음에 상심하지 않기

단념을 깨우는 채찍에 두려워하지 않기

 

나는 지금 투명한 기둥에 문을 만들고

모서리 하나를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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