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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의 질문에 대한 오랜 나의 답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5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1 17:14:1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new
BGM 출처 : https://youtu.be/VHKBIfjlF4E




1.jpg

강상기달팽이

 

 

 

정말 힘들게 사시네 그려

 

항상 짐을 지고 여행 다니는 것을

사람한테 배운 것이던가

 

짐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자네도 알기는 알 테지

 

짐을 버리고

자네조차 버리고

 

달을 팽이 삼아 놀아보게나







2.jpg

최영미나의 여행

 

 

 

거리에서 여행가방만 봐도

떠나고 싶어

 

세계지도를 펼치면

거기쯤에 있을 것 같아

내가 떠나온 고향이

 

흥분의 지퍼를 밀고 당기고

가방 속에 아침과 저녁이 들어갔다나갔다

자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날이 다가오면

이미 진이 빠져

 

터미널에 내려

무서운 자유의 광풍이 불면

전 생애를 끌고 어그적 어그적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다음날 아침에는 지도를 보며

새로운 도시를 정복할

구두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길을 잃어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3.jpg

문정영번진다는 것

 

 

번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녹슨 철길 너머로 봄풀 번지듯

건너오는 것이 보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약이 없다는 것

산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 번져서 푸르거나 붉게 물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가 내게로 시간차 없이 건너온다는 것

혀의 아래쪽이 때때로 마른다는 것

봄풀 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는 것

마른다는 것이나 젖은 것도

다 번지는 것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번진다는 것

때로 아픈 것이다







4.jpg

최정례실려 가는 나무

 

 

 

트럭에 실려 가는 나무는 내가 아니지

여자라고 할 수도 없지

산발한 머리채로 길바닥을 쓸며 끌려가는데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고

 

오늘의 뉴스는 어제의 뉴스와 비슷하고

24시 해장국 간판은 24시간 피곤하네

 

어제의 나뭇가지를 누벼 가던 달은

오늘 비틀거리지도 않고 제 길을 가고

뿌리 뽑힌 구덩이를 내려다보고도

같은 표정이네

 

걱정할 것은 없겠지

나만 죽고 당신은 오래 산다 해도

금방 내일이 될 테니

아이들도 혈육들도

어리둥절한 달도 무표정한 달도

모두 내일을 지나 모레를 지나

제 궤도를 가겠지

 

다른 행성으로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트럭에 누워 실려 가는 나무

가로수들 일제히 도열해서

경례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 잘못 왔다는 것인가

내내 서 있기만 하다 누워 가는데

조용히 못 본 척해야 하나







5.jpg

오춘옥뒷모습이 말했다

 

 

 

몇 번의 이별을 더 견뎌내다가

꽃은 진다

별자리를 뛰쳐나온 별들의 총총함으로

폐사지 돌멩이의 하염없는 깊이로

 

흉터마다 검은 씨 들기까지

허기가 이끄는 대로 이 골 저 골 헤매느라

초저녁 각도로 기울어진 어깨

그만 짐을 풀고 싶어 구겨진 엉덩이

 

너의 질문에 대한 오랜 나의 답이다

 

꽃 진 자리돌아와야 할 것들 아직 멀리 있어

거기까지 말없이 가자는데

눈과 입 먼저 보낸 뒷모습이

두서없이 무어라무어라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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