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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두 에세이] 지루한 일상 속 일탈
게시물ID : lovestory_854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황희두
추천 : 1
조회수 : 3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17 0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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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지난 2005년, 십여 년 넘게 지냈던 신림동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이사 온 용산. 당시 오후 10시가 넘어서 학원을 마친 후 버스 타고 한강대교를 처음 건넜던 순간이, 1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머리 속에 인상 깊게 남아있다.


창문 너머로 보였던 한강대교의 화려한 조명과 야경, 당당하게 뻗은 한강 줄기의 모습은 한순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화려해 보였던 한강이 금세 익숙해지자 나에게는 지루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가만 보면 인생의 모든 게 마찬가지인 거 같다.

지금 나를 설레게 해주는 모든 것들. 그것들은 전부 익숙해지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순간들. 직장도 그리고 사랑도.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있지 않은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

하지만 지금 나의 일상은 이미 익숙함에 속아 돌아올 수 없는 강까지 건넌 기분이다.


9시 출근과 18시 퇴근 때로는 야근까지도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일상.

시간이라는 존재에 쫓기며 뭘 했는지도 모른 채 빠르게 흘러가기만 하는 나날들.

자유와 특별함을 그토록 좋아하던 나였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익숙해진 탓에 모든 게 평범해진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연휴에도 출근한 나를 안쓰럽게 보며 친한 친구가 작은 위로를 건넸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고흐가 나오는 '라뜰리에 전시'를 함께 추천해주며.


그 날 저녁, 

나는 혼자 동대문에 위치한 라뜰리에 전시회를 구경 갔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전시를 보며 힐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입구, 그곳엔 나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다.


가끔은 말이야...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내려

마음껏 방황해 보는 거야.


지루했던 일상을 벗어나 마주하는 짜릿함의 순간..

그 순간은 말이야.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언제나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함께 하지..


미지의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두려운 일만은 아닐 거야..

어쩜 일탈이란 건...

그건 아마도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익숙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던 나였기에 문구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렇게 입구를 지나, 동굴로 된 출입문이 열리자 테르트르 광장이 나를 반겼다. 그곳은 예술의 향기가 넘쳐나고, 단풍이 예쁘게 물든 19세기 어느 가을날 광장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고흐의 자화상부터 시작해 정말 많은 그림들이 나를 반겼다. 넋을 놓은 채 사진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곳은 마들렌 꽃시장. 알고 보니 그곳에서는 모네의 정원 어트랙션을 진행 중이었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수련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그가 표현한 아름다운 지베르니의 정원의 모습에 푹 빠졌다. 어트랙션이 끝난 후 라마르틴 광장에 도착하니 그곳에선 뮤지컬이 진행 중이었다. '화가 공동체'라는 꿈을 안고 화려한 색이 가득 찬 남프랑스 아를로 온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 연기가 끝나갈 무렵, 고갱과 함께 노란 풍경의 초원으로 쓸쓸하게 걸어가는 고흐의 뒷모습을 보며 뭉클함이 느껴졌다. 

고흐의 비극적인 최후가 떠올랐기에 더더욱.


뮤지컬이 끝난 후 작가 에밀 졸라가 들려주는 빈 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도 구경했다. 죽기 직전, 너무나도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다는 고흐의 삶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내가 평소 비극적인 결말을 너무나 좋아하는 탓에 뭉클함이 생겨났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나는 혼자 전시회를 갔지만 행복이 느껴졌다. 왜 그런 것일까.

갑작스레 온 전시회였지만 잠시나마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19세기 프랑스에 몰입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 나는,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집에 오는 길에 한강에 들렀다. 날이 풀린 덕분인지 한강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커플 자전거를 타며 세상 제일 행복해 보이는 커플,

돗자리를 편 채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한 대학생들,

그리고 가장 부러웠던 가족 단위의 사람들까지.


사실 평소와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는 금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쓸쓸한 고흐의 뒷모습을 보며 느꼈던 아련함, 더 이상 완전체의 가족 모임이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 등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이다.


한강을 천천히 걷다 보니 다시 떠오른 어린 시절의 추억. 

어느 순간 어른의 삶에 익숙해지고, 주위 환경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탓에 더 이상은 느낄 수 없는 그런 낭만에 가슴이 아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뭉클해진다.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분노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없었던 그런 어린 시절의 낭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아주 가끔 일상에 지쳐 답답함을 느낄 때는 나처럼 즉흥적으로 일탈해보길 바란다.


어쩜 일탈이란 건...

그건 아마도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전시회 입구에서 처음 마주했던 그 문구처럼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자,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잠시나마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출처 http://brunch.co.kr/@youthhd/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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