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살아있는 것만 빛나는 게 아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862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0/05 13:41:0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bQpcUCn16CY





1.jpg

서수찬항아리

 

 

 

항아리에게

무서운 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빈 집에 살던 주인이

버리고 간 항아리인데요

껌껌해서 무섭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속이 보이지 않는 입을 가진 항아리

전에 살던 사람이

쌀이나 간장 된장들로

입을 막아 놔서 할 말을 안고

살았다는 듯이 거침없이 그 입에서

시정잡배나 할 말들을

쏟아내는 거예요

입 속을 한참 들여다봐도

쌓이고 쌓인 원한의 바닥이

무척 궁금했어요

크고 작은 말들을 얼마나

그동안 뱉지 않고 살았나

장독대가 무척 시끄러웠어요

전 주인을 원망도 많이 했지만

생각을 달리 먹기로 했어요

그 입들마다 연꽃을 가져다 띄워 놨더니

원한의 말들은 온데간데없고

입이 그제서야 공중에다

한 말씀을 근사하게 차려 놓더군요







2.jpg

나희덕빛은 얼마나 멀리서

 

 

 

저 석류나무도

빛을 찾아나선 삶이기는 마찬가지

주홍빛 뾰족한 빛이

그대로 아벌린 입이 되어

햇빛을 알알이 끌어모으고 있다

 

불꽃을 얹은 것 같은 고통이

붉은 잇몸 위에 뒤늦게 얹혀지고

그동안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사랑의 잔뼈들이

멀리서 햇살이 되어 박히는 가을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어도

빛을 찾아나선 삶이기는

마찬가지하고 누군가 불러본다







3.jpg

고진하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

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를 부르려 할 때

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자

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元祖)라고

 

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

노래 부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도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4.jpg

고증식기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다

 

늘 지나치던 저 겨울 숲도

훨씬 깊고 그윽하여

양지 바른 산허리

낮은 무덤 속 주인들 나와

도란도란 햇살 쪼이며 앉아 있고

더러는 마을로 내려와

낯익은 지붕들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살아있는 것만 빛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떠다니는 영혼들이

햇살 속에서 탁탁

해묵은 근심을 털어내고 있다







5.jpg

박용하행성

 

 

 

그러니까 매순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깐 매순간 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날아야 한다

매순간 심장을 날아야 한다

그러니까 심장을 날기 위해선

매순간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사는 곳이

늘 가장 깊은 곳

그러니까

우리 겨드랑이보다

우리 어깻죽지보다 넓은 곳은 없어라

그러니까

우리 눈동자보다

우리 머리카락보다

우리 손등보다 깊은 곳은 없어라

그러니까 매순간 빛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매순간 어둠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야 한다

매순간 심장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깐 심장을 살기 위해선

매순간 죽어야 한다

그러니까 매순간 태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매순간 삶을 까먹어야 한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