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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 속에 너를 숨겨 두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867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6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2/27 13:16:2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MTXHGtBHo2Q






1.jpg

황구하환한 구멍

 

 

 

천태산 은행나무 큰 덩치 하나 내려앉았다

간밤 다녀간 비와 바람의 농간이라 하지만

하루하루아름다운 낙지(落枝)를 위해

깊은 어둠 끌어안고

스스로 구멍을 내는 데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그 공덕으로 마침내 허공이 열려

또 한 짐 부릴 수 있으니

절 한 채 떠메고 가는 비책저 구멍에 있다







2.jpg

김륭눈사람을 만드는 건 불법이야

 

 

 

햇빛에 허를 찔려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려줄지도 몰라

눈사람을 만드는 건

불법이야햇빛은 언제나

어둡고 가난한 세상을 부정하고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팔다리가 잘린 채 암매장된

시체처럼 발굴하지만

괜찮아나는

태어날 때부터 두 손을

가슴에 푹 찔러놓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거든

글쎄어디쯤에서 펑펑

울었는지 누군가 질겅질겅

씹다 버린 껌을 밟았는지 그건

꽃밭에 발자국을 숨겨놓고 사는

눈사람의 사생활

오늘도 햇빛은

얼굴이 지워진 내 사랑을

고물 자전거 펑크 난 바퀴처럼

굴리고 가지만괜찮아

사과를 쪼개듯 햇빛이

세상을 반으로 나누지는

못할 테고나는

눈사람보다 더 따뜻하게

죽을 자신이 있거든

이건 절대 불법이

아니거든







3.jpg

박숙이굴렁쇠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아무리 잘 굴러도

구르는 재주가 용타 해도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

 

텅 빈 나

혼자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던 나

밀어준 손끌어준 손지켜본 눈

무수히 많네

 

참으로참으로 둥근

굴렁쇠 삶이었네







4.jpg

김인숙몸살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

길게멀리가고 싶은 몸

가두었다

주전자가 몸살을 앓는지

부글부글 열이 오른다

갇힌 것이 병이 된 모양이다

 

지독하게 긴

혼자만의 싸움이다

 

수양버들 가지처럼 늘어지는 오후

오월 산란기의 열목어 한 마리

계곡 아래 깊은 여울로 가라앉는다

충혈된 눈 속의 마그마가

분출하는 신열로 솟구친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인데

제자린 줄도 모르는 제자리에서

일급수에 젖어 웅크린 몸들

뒤틀리는 유리병 속에 있다







5.jpg

박진형점에 대하여

 

 

 

비루먹은 조랑말 빼고

우짖던 서리까마귀도 빼고

한쪽으로만 허리 휜 소나무도 빼고

예까지 따라 온 구부정 길도 빼고

아무렇게나 펄럭이던 청춘도 빼고

밤새 으르렁거리던 파도도 빼고

덧니 고운 애인도 빼고

눈물로 동여맨 추억도 빼고

절망한 자살바위도 빼고

노란 제주바다만 남겼다

 

적막 견딜 수 없어

검은 점 하나 찍어 두었다

그 속에 너를 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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