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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가슴에는 제비꽃이 한창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87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3/21 12:22:4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8J1zSsdFliM






1.jpg

천수호꽃씨의 발바닥

 

 

 

꽃씨를 심은 저 보름이 지났는데

새싹은 머리카락 한 올 보여주지 않는다

측근이 전하는 말

꽃씨에겐 땅속 동면이 필요하다는 것

마치 죽은 듯이 꼼짝 않던 전복이

꿈틀제 몸의 이미지를 전복하듯이

딱딱하고 죽은 것이

아니 죽은 듯이 굳어 있던 꽃씨가

제 발바닥을 한번 만져본다는 것

발바닥이 꽝꽝 언 수행을 겪고서야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발보다 큰 남편의 슬리퍼를 질질 끌고

꽃밭으로 걸어 나와

쿵쿵타닥타닥발소리로 흔들어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들

큰 슬리퍼 사이로 손 넣어

홁 묻은 찬 발바닥 슬쩍 쓸어본다

죽은 척 하는 것들끼리의

은밀한 교신







2.jpg

김태형소쩍새는 어디서 우는가

 

 

 

귀가 밝아진다는 건 그래도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다큐멘터리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작년 첫 울음 울다 간 소쩍새 한 마리

한 문장 속에서 다시 깃을 친다

홀로 밤늦게 찾아와 길게 목을 풀던 첫 손님

누군들 그 울음을 받아 적을 수 있었을까

늘 멀리만 보려던 닫힌 창가에 바짝 다가앉았다

손때 묻은 수첩을 꺼내든 이의 등 뒤로

눈이 까만 밤새가 울었다

올해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거든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니 더 늦을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아직 차다고

그때나 한번 찾아와 보라고

정작 나는 그 새가 언제 우는지 기다려지기보다

어디서 우는지 울어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저 울음이 배어나왔을 저녁 어둠은

아직 창밖의 나무옹이 속에 웅크려 있었다

저물녘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울창하고 맑은 밤의 창을 가진 이가 부러운 게 아니었다

아직 내 마른 묵필은 그 어둠을 가질 수 없었다







3.jpg

최창균자작나무 여자

 

 

 

그의 슬픔이 걷는다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의 그

먼 계곡에서 물 길어올리는지

저물녘 자작나무숲

더욱더 하얘진 종아리 걸어가고 걸어온다

그가 인 물동이 찔끔

저 엎질러지는 생각이 자욱 종아리 적신다

웃자라는 생각을 다 긷지 못하는

종아리의 슬픔이 너무나 눈부실 때

그도 검은 땅 털썩 주저앉고 싶었을 게다

생의 횃대에 아주 오르고 싶었을 게다

참았던 숲살이 벗어나기 위해

또는 흰 새가 나는 달빛의 길을 걸어는 보려

하얀 침묵의 껍질 한 꺼풀씩 벗기는

그는 누군가에게 기대어보듯 종아리 올려놓은 밤

거기 외려 잠들지 못하는 어둠

그의 종아리께 환하게 먹기름으로 탄다

그래그래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

종아리가 슬픈 여자

그 흰 종아리의 슬픔이 다시 길게 걷는다







4.jpg

송찬호동백이 활짝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5.jpg

나호열제비꽃이 보고 싶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들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많이 떠들었다

듣지 않는 귀

보지 않는 눈

말하지 않는 혀

그래도 봄바람은 분다

그래도 제비꽃은 돋아 오른다

뜯어내도 송두리째

뿌리까지 들어내도

가슴에는 제비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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