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882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8/26 08:36:2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Sj_77ahq0vo






1.jpg

이경임동화가 있는 풍경

 

 

 

아기나무가 엄마나무에게 물었답니다

나는 왜 새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햇살이나 물이 될 수 없나요

너는 날마다 키가 크는 감옥이야

아무나 그런 감옥이 될 수는 없단다

그럼키가 커서 난 무엇이 되는 거죠?

넌 의자도 될 수 있고조각품도 될 수 있단다

하지만 난 어디에든 갈 수가 없잖아요

나중에 그런 것들이 되어보렴

오랫동안 한곳에

생각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세상의 무수한 갈랫길들이

환하게 보인단다그때에는

넌 어디에나 갈 수 있을거야






2.jpg

정호승술 한 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가을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3.jpg

이하석나는 망가진

 

 

 

나는 망가진 풍경이다 언제나

지난 밤의 어둠이 남아있는 구석을

내 몸과 방에 갖고 있다

나는내다보는

갇힌 풍경이다 나는

끝난 풍경이다 나는

차갑게 반영하는투명한

풍경이다 누가들여다본다

나는풍경이 아니다 바깥을 향한

뜨거운 눈이다







4.jpg

이태수새에게

 

 


새야너는 길 없는 길을 가져서 부럽다

길을 내거나 아스팔트를 깔지 않아도 되고

가다가 서다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디든 날아오를 때만 잠시 허공을 빌렸다가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길 위에서 길을 잃고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너무 많은 길 위에서

새야나는 철없이 꿈길을 가는 아이처럼

옥빛 허공 깊숙이 날아오르는 네가 부럽다






5.jpg

나희덕빈 의자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 번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아직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축 늘어뜨린 왼손보다

무릎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그걸 말해준다

손 위에 번져가는 검버섯을 지켜보듯이

그대로 검버섯으로 세상 구석에 피어난 듯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는 일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필사적인 증거였다

어느 날 그 침묵이 텅 비워진 자리

세월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 후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빈 의자에는

작은 새들조차 날아오지 않았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