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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자리(2)
게시물ID : lovestory_889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3 1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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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참고 끝까장 읽는 이는 복이 있나니,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겠고.

***


    사랑, 그 자리(2)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도 내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여자에게 전화해서 아빠를 만나지 말라고 할까? 그런데 혹시 전화번호가 잘못 입력됐음 어떻게 하는가가 또 걱정이었다. 전화번호는 맞다고 해도 아빠를 모른다고 해버리면 여자의 목소리는 모르니 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저렇게 모든 게 걱정이고 고민이었다. 엄마가 알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고, 동생들과 의논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을 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알고 가만히 있을 애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제 곧 나의 남편이 될 그에게 도움을 구하기에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아빠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모르는 척하는 것이 좋을까? 그리고 여자를 닦달해 둘의 관계만 끊으면 아빠의 불륜은 없어지는 것인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고, 말끔히 용서를 해줘야 되는 것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고민을 안겨준 아빠가 미웠고, 아빠를 방치한 엄마에게 화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에서는 김부장이 눈을 모로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머리를 조아렸다. 

 “부장님, 너무 죄송해요!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김지현씨, 죄송하다면 다야? 구체적으로  배가 어떻게 아팠는데?”

 “점심 먹은 것이 잘못됐나 봐요!”

 평소 같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얼버무렸을 나였지만 아빠의 일이 머릿속에 꽉 차 있어선지 별 생각없이 말하고 있었다. 배가 아팠다면 그만이지 그런 걸 꼭 꼬치꼬치 따져묻는 김부장이었다. 그리고는 1시간도 더 허비를 했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손해를 입었냐며 내가 시급으로 따지면 얼마 짜리냐고 묻고는 그렇게는 계산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자 변상을 하려면 시급의 5배는 물어내야 될 거라고 했다. 회사 입장에선 이윤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을 포함하고, 내가 쓰는 경비, 내가 발생시킬 이윤까지 변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이런저런 잔소리를 한참 더 하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아니, 지현씨는 왜 아직 거기 서 있어? 일 안하고! 똥 땜에 이 무슨 똥 같은 경우야? 시간낭비를 얼마나 했냐구! 직장인들은 출근하면 몸도 제 몸이 아니라 회사 몸이야! 앞으로 점심도 배탈 안날 거 골라서 먹고! 알았어?”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 앉았다. 걸진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아빠와 그 여자를 생각하느라 부끄럽고 자존심 상할 틈도, 우울하고 화가 날 여가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를 옮길까, 충동이 일지도 않았다.

 그날도 나는 야근을 하고 늦은 퇴근을 했다. 줄곧 아빠의 일만 생각하다보니 지하철을 내려서야 후회를 했다. 회사에서는 결혼하고 살 집에 가리라 생각하고선 여기로 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거기로 돌아가기엔 너무 피곤했다. 거실에서 엄마는 골프채널을 보고, 아빠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쾅, 닫고 잠궜다. 엄마가 바로 문을 두드렸다.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미움이 솟구쳐 올랐다. 아빠를 그렇게 방치한 책임은 결국 엄마에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봐!”

 엄마가 문을 두드리며 손잡이를 돌려댔다. 내가 소리를 질렀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가만 좀 둬!”

 “얘가 왜이래? 갑자기 않던 짓을 하고 난리야? 니가 지효니, 지수니? 엄마한테 왜 짜증을 부리고 지랄이야? 더러워 죽겠네! 이제 만만한 년은 하나도 없네!”

 엄마는 나보다 더 높은 목소리로 짜증을 부리더니 가버렸다. 엄마는 원래 무엇이든 가슴 속에 담아두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자매들은 모이면 말한다. 엄마는 스트레스 제로일 거라고. 

 “언니, 무슨 일 있어? 문 좀 열어봐!”

 지효가 제 방에서 들었는지 문을 두드렸다. 자다가 깬 것인지 목소리에 졸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곧 결혼을 한다니까 그런지 언니인 나를 무척 챙겨주는 지효였다. 

 “아니, 피곤해서 그러니까 가서 자!”

 “그런 거 맞지? 나 잔다아!”   

 지효가 가고 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출장 중인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오늘은 영상통화 왜 안해? 아니, 울고 있는 거야?”

 그가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왜? 보고 싶어 우는 거야? 내일 모레면 가는데 뭘 울어?“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더 조심스러워했다.

 “혹시 엄마하고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어머님은 만나지도 않았는데 뭘.”

 “그럼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그냥 울고 싶어서!”

 “그냥 울고 싶어서가 뭐야? 보고 싶어서라든가 뭐 이유가 있어야 될 거 아냐?”

 “오빠, 정말 나 사랑하지?”

 “바보! 그걸 말이라고 해? 근데 너 왜 그래?”

 “언제까지 사랑하는데?”

 “영원이지, 그걸 말이라고! 진짜 너 이상하다?”

 “진짜 영원이지?”

 “그렇다니까!”

 “그래, 나도 믿어! 오빠 사랑해!”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내일부터는 여기로 오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아빠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보니 다음날도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둔 것이 10년 쯤 됐다.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헝클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웬만한 일은 아빠의 양보와 인내로 조용히 넘어갔던 것이다. 그때 아빠의 회사에선 300명을 감원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가 자진해서 1호로 사표를 썼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엄마와는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아빠의 사표가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된 날 밤엔ㅡ엄마는 평소 친분이 있는 아빠 회사 회장의 부인에게 사표 반려를 부탁하러 갔다고 했다ㅡ 난리가 아니었다. 엄마는 거의 난동 수준으로 설쳐댔다.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갔고, 동네가 떠나가라고 악을 썼다.

 “회장 마누라 그 늙은 돌아이년한테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어떻게 한 줄 아냐고?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했겠어? 때미는 거, 안마하는 거 배워서 때미는 종노릇, 안마하는 종노릇했어! 자존심도 없는 종노릇했다고오! 골프 눈치 못 채게, 기분 상하지 않게 져주는 건 쉬운 일인 줄 알아? 쉬운 일이냐고오?”

 “......”

 “부장은 당신 능력으로 된 줄 알아? 나 아니었음 당신은 만년과장이야. 10년 후에는 사장되게 만들어 놨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사표를 쓰냐고, 등신아!”

 “대가리에 똥만 찬 썩은 인간들 수발하는 건 쉬운 일인지 알아?”

 그날 처음으로 아빠도 언성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퍼질러 앉아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넋두리가 시작됐다.


 ㅡ3편에서 계에속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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