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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자리(3)
게시물ID : lovestory_889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2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4 11: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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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자자,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더. 요거 빼고 두 편 밖에 안 남았으니깐요, 아주 쪼끔만 더 분발하시길요! 복 받는 거시 절때로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


     사랑, 그 자리(3)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남자 출세시키겠다고 발버둥친 내가 잘못이야아? 잘못이냐고오? 당신이 회사 때려치면 나는 무슨 낯으로 다니고, 우리 애들 공부는 어떻게 시키며, 시집은 어떻게 보내냐고오! 아빠가 오송전자 임원이다, 사장이다 하면 애들이 시집가도 얼마나 든든하겠냐고오! 사돈들, 사위들한테 빨도 서고오! 등신 같은 게 왜 사표는 1빠로 쓰고 지랄이냐고오! 촌놈주제에 뭐가 잘났다고오! 그게 회사정책에 앞장 서서 반발하는 게 아니고 뭐냐고 그 늙은 돌아이년이 그러더라고오!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음 어쩌냐고, 천한 것들이 자리가 뭔지 아냐고 비웃는데에, 내가 머리도 못뜯고 왔네에! 아이구 분해라, 아이구 분해애! ……”

 그날 우리 자매들이 결사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면 거실에서 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아빠는 엄마를 달래지도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도 끝내 하지 않았다. 아빠는 조용하고 유순했지만 고집도 있었다. 엄마의 말에는 과장이 있었다. 우리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고, 그때까지도 엄마 아빠가 돈 문제로 다투거나 심각한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엄마가 하는 골프용품 가게도 갈수록 번창하고 있었다. 

 “나 내려가서 농사 지을 거야!”

 마지막으로 아빠가 한 이 말은 엄마의 분노에 기름이 되었다.

 “농사아? 농사는 쉬울 줄 알아아! 쉬울 줄 아냐고오! 그래, 내려가서 궁상떨고 살면 친척들이 나보고 뭐라고 그러겠어? 당신은 나 나쁜년 만들면 좋아? 좋냐고오? 내가 반찬이라도 해서 일주일에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내려가야 될 텐데, 난 싫어! 그 무식한 촌것들 만나는 거 싫다고! 차라리 백수로 살아아!”

 그날, 아빠가 집을 나갔다 몇 시간 만에 들어오는 것으로 엄마의 난동은 끝이 났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고 제일 먼저 엄마가 한 일은 더 넓은 아파트로의 이사를 결정함과 동시에 아빠의 옷을 버리는 일이었다. 정장 양복들과 잠옷과 트레이닝복만 빼고 골프옷, 등산복, 점퍼, 티셔츠, 청바지 등을 사정없이 버렸다. 말로는 옷장이 복잡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누가 봐도 엄마의 과시욕을 좌절시킨 아빠에 대한 복수극이었다. 어쩌면, 반발로 아니면 자의로 아빠가 다른 여자를 꿈꿀 수 있는 여지를 없애려고 외출을 못하게 하려는 속셈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가 양복만 있음 되지 뭐가 더 필요해! 특히 당신처럼 반사회적인 백수는 옷이 필요가 없지!”

 그리고 아빠의 카드를 전부 회수해 가위로 잘랐다. 동문회, 동창회, 향우회 등 아빠의 대인관계도 카드와 함께 잘려나갔다. 자동차와 골프채는 중고로 처분됐다. ‘아빠 무력화시키기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곧바로 훨씬 더 넓은, 방이 네 개인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ㅡ그때까지 한 방에서 지내던 지효와 지수는 서로 제 방이 생겼다고 좋아서 입이 찢어졌다ㅡ, 아빠가 할 만한 운동기구는 거의 다 들여놨다. 거실이 아니라 미니 헬스장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당신은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 나가면 돈 쓸 일 밖에 더 있어? 백수가 쓰는 거라도 안 해야지! 당신이 생리를 할거야, 급하게 돈 쓸 일이 뭐가 있어? 정 급하면 전화해! 내가 결제해주께!”

 아빠는 역시 말이 없었고, 아빠가 책상처럼 거실 구석자리에서 쓰는 앉은뱅이 탁자에는 아빠처럼 구겨진 만원 짜리 한 장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아빠는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조용히 술을 마시고ㅡ엄마는 냉장고에 항상 소주와 맥주를 채워 놓았다. 애완동물의 사료처럼ㅡ, 조용히 자고, 조용히 지냈다. 아빠의 공간은 거실이었다. 거실에서 혼자서 바둑도 두고, 서예도 했다. 안방은 두 사람의 침실이자 엄마의 공간이지 아빠의 공간은 아니었다. 새벽에도 아빠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것이 자주 목격됐다. 엄마 아빠는 ㅇㅇ는 하는 걸까, 의문이 들곤 했다. 한 침대를 쓰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동물적인 욕구를 그저 해소나 하면서 살까? 사랑이 없는 슬픈 ㅇㅇ 말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대놓고 아빠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무시하는 것은 가족외식 때 가장 두드러졌다. 아빠의 식성은 완전히 무시됐다. 엄마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먹어야 했다. 같이 가지 않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대번 엄마의 잔소리가 날아갔다.

 “우리가 큰 거 요구해? 가족들이 먹고 싶은 것도 같이 못 먹어줘? 당신이 빠지고 우리끼리 먹으면 목에 넘어가겠어? 맛이 있겠냐고?”

 음식을 먹는데 아빠가 있고 없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엄마는 열을 올리곤 했다. 아빠는 묵묵히 우리를 따라다녔다. 마치 영혼이 없는 로봇처럼. 외식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2차는 쇼핑이었다. 남자들이 제일 힘든 것이 여자와 쇼핑하는 일이라는데, 아빠는 얼마나 지겨웠을까. 엄마는 아빠가 어디에 앉아 있지도 못하게 했다.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니게 했다. 쇼핑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빠가 여자옷을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한들 무슨 소용이라고. 혹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와의 쇼핑 때 그렇게 높아진 아빠의 안목이 도움이 됐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식 한 번 하고 오면 아빠는 팍 늙어버린 듯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아빠에게 그런 일들이 고역일 걸 알면서도 왜 한 번도 엄마를 제지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빠가 자상하지는 않았다. 우리 자매들에게 말로도 글로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성격 때문일 뿐 아빠가 우리 자매들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졌다. 집에서는 베란다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아빠는 초등생이던 내가 아빠에게서 나는 담배냄새가 싫다고 하자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우리가 아프면 밤새워 옆에서 지켜준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우리 자매들은 그런 아빠의 편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한번은 아빠가 친척 문상을 갔다 술을 좀 많이 마셨던 것인지 엄마에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내 방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내가 말라 죽기를 원하제?”

 그 후로도 아빠는 여전히 거실에만 있는 정물화처럼 지냈다. 

 엄마 아빠도 열렬히 사랑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결혼도 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엄마는 왜 그랬을까?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아빠의 출세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렇다고 사랑해서 결혼하고, 애들까지 같이 낳은 아빠를 그렇게까지 구박해야 했을까? 엄마의 미움은 아빠를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만들고 말았지 않은가 말이다.


 —4편에서 계에속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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