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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자리(마지막편)
게시물ID : lovestory_889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2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06 11: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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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드뎌 마지막편요. 다 읽으시는 순간부터 복 억수로 받은 걸로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더. 나갈 때도 복을 받고, 들올 때도 복을 받으니!

***

     

    사랑, 그 자리(마지막편)



 아빠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 그는 일단 여자를 만나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두렵다고 했고, 그가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꽃집으로 갔다.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꽃집 안에는 그 여자 밖에 없었다. 그가 뒤에 있는데도 가슴이 떨렸다.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꽃을 손질하던 여자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저께 봤던 것처럼 엄마보다 덜 예쁘고, 더 늙어보였지만 목소리는 상냥했고, 표정이 무척 밝았다.

 “어떤 꽃이 필요하세요?”

 나는 용기를 내 여자를 쳐다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김병용씨 딸이에요!”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았다.

 “…… 그분에게 이렇게 예쁜 딸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담담한 여자의 태도에 나는 조금 도전적이 되었다.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가족이 있을 줄 몰랐나요? 아줌마는 가족이 없나요?”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여기는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까 우리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해요.”

 여자의 뒤를 따랐다. 따라오는 그에게 차에 가 있으라고 손짓을 해줬다. 조금 걷다가 한 카페에 들어갔다. 넓은 카페엔 손님이 없었다. 여자는 카운터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불륜이고, 나는 합법적인 딸이 아닌가 말이다. 주문을 하고 여자가 앉자마자 나는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우리 아빠 만나지 마세요!”

 무슨 말을 꺼낼 듯하던 여자는 말없이 화장실로 갔다. 나는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에 내 요구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한참이나 있다가 여자가 왔다. 여자가 물었다. 

 “뭐 달라진 거 없어요?”

 “뭐가요?”

 “자세히 봐요!”

 이게 무슨 선문답인가 싶었다. 여자가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더니 뗐다. 가슴이 작은 내가 부러울 정도로 컸던 가슴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15년 전에 싸악 잘라냈어요. 가슴이 뭐라고 남편한테도 버림을 받았죠.”

 “……”

 “그분은 7년 쯤 전에 만났구요.”

 여자는 담담하게 말했고, 나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분은 처음부터 이런 거 알았구요.”

 힘이 쭉 빠졌다. 아빠와 여자를 헤어지게 만들 수 없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가슴이 여자의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섹슈얼리티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많은 여자들이 가슴을 키우지 못해 안달한다. 내 주변에도 작지도 않은데 더 키웠거나, 더 키울 계획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작지 않고, 지금이 딱 좋다고 하지만 나 또한 작은 가슴이 스트레스였다. 그게 그의 진심이 아니라면, 아니면 그 마음이 변한다면 난 언제라도 가슴을 키울 것이다. 그런데 가슴이 아예 없는 여자를 만나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 남자가 바로 아빠라니! 그러고보니 아빠가 매일처럼 마시던 술을 끊다시피하고 먼지가 켜켜이 쌓였던 운동기구를 부려먹기 시작하던 때가 바로 여자를 만나기 시작한 때였던 것 같다. 이젠 아빠를 미워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자는 내가 어떤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커피는 식어 가고 있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입을 뗐다.

 “…… 저도 곧 결혼하구요! 우리 아빠 딸이 셋이고, 아내도 있어요!”

 “……”

 “우리 아빠 돌려보내주심 안돼요?”

 어떻게 된 것이 불륜녀가 아니라 합법적인 딸인 내가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었다.

 “…… 나는 그분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

 변함없이 담담한 어조로 여자가 말했다. 아빠를 사랑하는 데서 오는 것일까? 여자에게는 내가 어떻게 못할 힘이 느껴졌다. 끝내 여자는 오늘의 일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둘은 자신들의 일이 드러나 버리기를 정녕 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 아빠가 한숨을 쉬면서 엄마보고 들으라는 듯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라도 벌어지고 나면 어떻게든 다 해결되게 마련인데 나는 이러고 있네......”  

 여자와 헤어진 나는 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시원한 바람을 마시고 싶었다. 그가 말했다. 

 “아버님의 순애보네!”

 “오빠, 이제 어떡해?”

 “지현아,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애. 문제라고 다 해결해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봐. 가만 놔두는 것이 해결책인 문제도 있어.”

 “그럼 모르는 척할까?”

 “응. 처음부터 못 본 척.”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결국은 자리의 문제야. 어머님은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고, 아버님도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은 거지. 나는 두 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봐. 두 분의 운명이거나.“

 “그렇다고 우리 아빠도, 나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건 아니지?”

 “지현아, 아버님께 여자가 있다는 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보다 큰일이야?”

 “아니.”

 “우리가 사랑하는 것 말고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작은 일이다, 그지?“ 

 “응. 오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지?“

 “그럼! 지현이 너도 그 자리에 있을 거고. 그분들은 그분들이고,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시키는 대로. 알았지?” 

 “응. 알았어. 근데 오빠, 나, 가슴 키울까?”

 “아니, 됐어! 지금도 너무 예뻐!”

 그가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어서 흔들었다. 그래,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을까. 이렇게 마냥 좋은데. 우리의 사랑이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에게는, 어쩌면 아빠에게도 미안한 일이었지만.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강변을 거닐다가 그의 집으로 갔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엄마는 골프채널을 보고 아빠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뭐하고 살고 싶어?”

 “음…… 아부지는 농사 짓고 살고 싶지.” 

 “지금이라도 가지?”

 “엄마랑 싸우는 거 느그들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그러지. 느그들 다 시집 보내면 내려가야지.”

 아빠의 목소리에 반짝, 희망이 묻어났다. 처음부터 아빠는 귀농을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생일 때도 농사에 관한 책이 집에 많았다. 잘 모르긴 해도 물려받은 논밭도 꽤 되는 것 같았다. 소작료로 친척이 보내주는 쌀을 외삼촌들에게 넉넉하게 나눠주고도 늘 남는 것을 보면. 할머니가 살던 쓸 만한 집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이 집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빠, 미안해요!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나는 마음으로 아빠에게 사과했다.

 “엄마는 데리고 갈 거야?”

 “느그 엄마는 서울 체질이라니까 여기 있음 되지 뭐.”

 “알았어. 내가 지효, 지수도 빨리 결혼하게 만들께.”

 “그래. 고맙다.”

 아빠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엄마는 TV만 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요즘 우리 아빠 너무 멋있지 않아? 근육 보면 꼭 청년 같애!”

 아닌 게 아니라 아빠의 몸은 점점 더 울룩불룩해지고 있었다.

 “멋있긴 개뿔!”

 “우리 아빠 진짜 멋있다니까! 아빠한테 여자 생기면 어쩔 거야?”

 “여자들이 눈이 삐었냐? 어떤 미친 것이 다 늙은 느이 아빠 좋아한대? 그런 년 있음 제발 느이 아빠 좀 데려가라 그래!”

 아빠 또한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바둑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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