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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당신이라는 간이역을 찾아간다
게시물ID : lovestory_89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12/21 23:27: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AvfJnLPAHGk






1.jpg

이병률

 

 

 

남산을 지날 때면 점()이 보고 싶어진다

왜 흘린 세월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꼬리가 있었는지 뿌리를 가졌는지

남산에서는 내 오래전을 뒤집어쓰고 끊어진 혈을 여미고 싶다

이빨이 몇 개였는지 불에 잘 탔는지

목은 하나였는지 화석은 될 만했는지

그 발치들을 가져다 멋대로 차려 놓고 싶다

 

간절히 점을 보고 싶다

삭제된 것들의 입장들

우물쭈물하는 물질들

세수 안 한 것들의 안면들

끝이 언제인지 모를 이 예비의 관계들

나에게 잘해주지 못한 안색들

결국은 이것들로 몸 한 칸의 물기를 마르게 할 수 있는지를

 

풍부한 공기에 대담히 말을 풀어놓고 싶다

가을에 남산을 지날 때면

이 숲 나무에서는 소금 맛이 나는지

그 맛이 사람 맛인지를 알고 싶다

 

나에게 이토록 박힌 것이

파편인지 비수인지

심장에서 내몬 사람이 하나뿐인지

 

훗날 다른 생에서도 사람을 갖고 싶은지까지도







2.jpg

나태주

 

 

 

집에 있을 때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도

집을 나서기만 하면 밥을 많이 먹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외로움이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밥을

많이 먹게 하는지도 모르는 일

 

밥은 또 하나의 집이다







3.jpg

이미란당신이라는 간이역

 

 

 

나는 추억을 부정하진 않는다

오늘도 인연이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당신이라는 간이역을 찾아간다

시간이 지나가는 길목엔

처음 같은 두려운 풍경이 기다린다

어느 날은 대낮의 플랫폼에서

아직은 낯선 당신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어두운 대합실에서

연착을 알리는 당신의 깃발을 찾기도 한다

당신은 나를 가벼운 눈길로 배웅하라

뜨거운 악수는 생략되어도 좋다

진한 이별의 말은 나누지 않아도 좋다

당신을 만나기 위한 많은 날들과

당신을 만나고 돌아선 많은 날들을

천천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리니

당신의 이름이 과거로 명명됨을 슬퍼하지 마라

또 다른 간이역을 찾아 떠나는 나는

당신의 눈빛에 이 말 한 마디를 남겨둔다

나는 추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추억이 된 당신이 못내 서러울 뿐이다







4.jpg

서상만수양버들의 연애법

 

 

 

저런저런

휘늘어진 머리다 풀어헤치고

 

바람을 붙잡고 무슨 음계로

저리 물색없이 놀아나는지

 

커다란 물거울에 제 얼굴 들여다보고

연둣빛 물오른 낭창한 허리를

이리저리 꼬면서

 

저수지의 고요를 흔들다가

긴 머리로 물의 옆구리 꾹꾹 찔러대네

 

저편까지 수양버들의 마음은

둥글게 퍼져 가는데

 

짐짓 모른 채 눈을 감은

저 고요한 저수지

 

소금쟁이만 마음 한 자락 읽다가 가네







5.jpg

문정희통역

 

 

 

깃털 하나가 허공에서 내려와

어깨를 툭건드린다

내 몸에서 감탄이 깨어난다

 

별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래된 기억을 건드린다

물살을 슬쩍일으킨다

 

깃털과 별과

나 사이

통역이 필요없다

 

그 의미를 묻지 않아도

서로 다 알아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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