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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어느새 시가 짧아졌습니다
게시물ID : lovestory_893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02 22:27:0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MTKnYS6rEnw






1.jpg

구석본식사

 

 

 

은빛 고요가 불타오르는 쟁반 위에

구워진 생선 두 마리가 놓여 있다

한 생을 자글자글 태우던 허기

정면 체위로 누워 있다

 

나이프로 먼저 대가리를 자르고 꼬리를 자른다

그다음 배때기를 쩌억 가르면

살보다 먼저 드러나는 주렁주렁 엮인 알들

포크로 찍어 천천히 씹으면 하나씩 입 안에서 터진다

비릿하면서도 고소하다

한 생을 통째로 먹는 맛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알들이 푸득거린다

비로소 한사코 내 살 속으로 파고든다

알알이 내 살 속에 박혀 부풀어 오른다

어느새 내 몸은 만삭이다

만삭의 몸으로 식당을 나서면

알에서 깨어나

내 안에서 끊임없이 푸드득거리는 치어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채울 수 없는 허기로 자글자글 타오르는 나를

쟁반 위로 스르르 올려놓고 있다







2.jpg

곽재구어란진에서

 

 

 

바람처럼 이곳 바다에 섰네

어깨 너머로 본 삶은 늘 어둡고 막막하여

쓸쓸한 한 마리 뿔고둥처럼

세상의 개펄에서 포복했었네

사랑이여정신 없는 갯병처럼

한 죽음이 또 한 죽음을 불러일으키고

더러는 바라볼 슬픔마저 차라리 아득하여

조용히 웃네

봄가뭄 속에 별 하나 뜨고

별 속에 바람 하나 불고

산수유 꽃망울 황토 언덕을 절며 적시느니







3.jpg

함민복마흔 번째 봄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꽃 진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4.jpg

이복희삭발

 

 

 

머리를 조금 잘랐더니

어느새 시가

짧아졌습니다

 

긴 머리만큼이나 길었던 시

 

이제는

한 줄의 시도 쓰지 않기 위하여

비구니처럼

나는

푸른 삭발을

꿈꾸고 있습니다







5.jpg

유안진술친구 찾지 마라

 

 

 

아무리 마음 맞는 여럿이

얼크러 설크러져 마셔봐도

결국에는 저 혼자서 마시는 것이 되고

저마다 제각기

제 상처만을 찾아가는 외로운 술자리

멱살 잡을 원수도

목을 안고 같이 울 그이도

결국에는 외동그레 저 하나일 뿐

가엾은 제 몸밖에 누가 또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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