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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다 가져가 버렸구나
게시물ID : lovestory_89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2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29 22:19:4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WvT8rUtQkyk






1.jpg

박선경장마

 

 

 

비는 그렇게 서서

나를 흘려보냅니다

이것은 모두 비의 환상입니다

 

빗줄기에 매달린 창문들이 인사를 합니다

그는 남은 옷가지와 가방이 정리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죽음으로 잊혀지고

나는 내일 아침 세면대 앞에서

울고 있을 여자와

곧 냉장고 정리와 묵은 빨래를 마저 하지 못한 채

떠날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방안의 온기를 유지하고

세월에 일그러지는 가구의 아귀를 맞추며

비밀번호를 간직한 방의 일부가 되어가는 일

빛바랜 사진 속그들의 품에서 풍선을 놓치고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는 이제 없습니다

 

오래된 흠집처럼 비는 서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나는

지금 내리고 있는 창 밖

비의 환상입니다







2.jpg

최정아뒤뜰

 

 

 

뒷문밖엔 이마 서늘한 그늘이 산다

저 늙고 병든 짐승

윙윙 댓잎 같이 날선 바람을

사철 등에 업고 산다

한나절도 못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쳐

구석까지 밀려나 바싹 엎드린다

어둑발 들이치기 무섭게 몸져누워버린

발톱은 늘 축축하다

마흔 해도 더

싸리꽃잎처럼 붉은 송아지 울음을

자욱이 깔리는 저녁연기를사랑하면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해 괴괴한

열사흘 달빛에 곤두서는 털가죽

앞마당 가득 출렁이는 햇살은

뒤뜰에 엎드린 짐승의 뜨거운 입김이다







3.jpg

전동균마흔을 넘는다는 것은

 

 

 

가장 추운 겨울날

식구들 몰래

풍경 하나 매다는 일

밀물이 들듯

밀물에 배가 떠올라 앞으로 나아가듯

울리는 풍경소리에

멀리 있는 산이 환하게 떠오르면

그 산 속배고픈 짐승의

흩어진 발자국 같은 것도 찾아보는 일

마흔을 넘는다는 것은

찬바람 속에 풍경 하나 매달고

온종일 그 소리를

혼자 듣는 일

풍경 속에 잠든 수많은 소리를 모셔와

그 중 외롭고 서러운 것에게는

술도 한잔 건네는 일

더러는 숨을 멈추며

싸락눈처럼 젖어드는 고요에

아프게아프게 금이 가는 가슴 한쪽을

오랫동안 쓸어주는 일

그 끝에 반짝이는

검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일







4.jpg

이재무건들건들

 

 

 

꽃한테 농이나 걸며 살면 어떤가

움켜쥔 것 놓아야 새 것 잡을 수 있지

빈손이라야 건들건들 놀 수 있지

암팡지고 꾀바르게 사느라

웃음 배웅한 뒤 그늘 깊어진 얼굴들아

경전 따위 율법 따위 침이나 뱉어주고

가볍고 시원하게 간들간들 근들근들

영혼 곳간에 쟁인 시간의 낱알

한 톨 두 톨 빼먹으며 살면 어떤가

해종일 가지나 희롱하는 바람같이







5.jpg

하정임찻물 끓이기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그 소리 방울방울 몸을 일으켜

솨솨 솔바람 소리

후두둑후두둑 빗방울 소리

자그락자그락 자갈길 걷는 소리

가만!

내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 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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