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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비는 한숨진다
게시물ID : lovestory_900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28 18:21:0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수영검은 우물

 

 

 

외딴곳에 집이 한 채 있으면 하고 생각하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돌투성이 언덕뙤약볕에 익은 돌들이

서늘해지는 밤이면 불꽃을 내며 터지고

뜨거운 돌 아래 뱀과 붉은 지네가 우글거리는 곳에

바닥이 안 보이게 우물 하나 파고

밤마다 들여다보며 있고 싶지

우물 바닥 깊은 곳에서 올라와 무화과 잎처럼 펼쳐지는

우우거리는 것들이 더 깊은 울림을 지니도록

두레박이 깨어져라 수면을 때리지

 

아무리 퍼마셔도 목마른 물이 있지

끊임없이 솟아도 결코 차오르는 법 없는

밑바닥 없는 구멍

우물 바닥은 내 눈보다 더 축축한 검은 빛이지







2.jpg

윤곤강나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의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 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3.jpg

문덕수꽃과 언어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4.jpg

오세영모순의 흙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그릇







5.jpg

이동순물의 노래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

돌아가 고향하늘에 맺힌 물 되어 흐르며

예섰던 우물가 대추나무에도 휘감기리

살던 집 문고리도 온몸으로 흔들어보리

살아생전 영영 돌아가지 못함이라

오늘도 물가에서 잠긴 언덕 바라보고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 꿈에 가위 눌리니

세상사람 우릴 보고 수몰민이라 한다

옮겨간 낯선 곳에 눈물 뿌려 기심매고

거친 땅에 솟은 자갈돌 먼 곳으로 던져가며

다시 살아보려 바둥거리는 깨진 무릎으로

구석에 서성이던 우리들 노래도 물속에 묻혔으니

두 눈 부릅뜨고 소리쳐 불러보아도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만 나루터에 쌓여갈 뿐

나는 수몰민뿌리째 뽑혀 던져진 사람

마을아 억센 풀아 무너진 흙담들아

언젠가 돌아가리라 너희들 물 틈으로

나 또한 한 많은 물방울 되어 세상길 흘러흘러

돌아가 고향하늘에 홀로 글썽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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