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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이대로 외로워서 좋다
게시물ID : lovestory_901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5/31 16:16:1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오규원순례의 서()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을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사람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

 

바람이 분다살아봐야겠다







2.jpg

이형기귀로(歸路)

 

 

 

이제는 나도 옷깃을 여미자

마을에는 등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복된 저녁상을 받고 앉았을 게다

 

지금은

이 언덕길을 내려가는 시간

한 오큼 내 각혈의

선명한 빛깔 우에 바람이 불고

지는 가랑잎처럼

나는 이대로 외로워서 좋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 말없이 울고 간

내 마음 숲 속 길에

 

가을이 온다

 

내 팔에 안기기에는 너무나 벅찬

숭엄(崇嚴)한 가을이

아무데서나 나를 향하여 밀려든다







3.jpg

신석정망향의 노래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꽃잎마다

지는 꽃잎마다

곱다랗게 자꾸만

감기는 서러운 서러운 연륜을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소리랑

곤때 가신 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 어린 손자랑 사는 곳

 

버리고 온 생활이며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만 싶어 밤을 새운다







4.jpg

강경화공주에 내리던 비

 

 

 

어제는 감나무 아래 비가 오더니

꿈에 양철지붕을 두드리던 비소리가 모여

오늘은 시냇물을 이루네

 

물가에서는 어머니 염불소리도 들리고

여러 고장을 떠돌다 온 아버지

넋두리도 들리고

감나무엔 목을 맨 내 누이

달빛 아래 흔들리던 치마폭도 보이네

 

상여가 나가던 날

징검다리를 건너며 물을 튕기며

열살 난 나는 사촌형 목소리로 말했지

누가 이렇게 슬픈 세상을 만들었을까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슬프게 만들었을까

 

갈대 자욱한 숲길로 형이 가듯

내 알던 이들은 가고

감나무 밑에는 날마다 비가 내린다

들판에 아무도 없는 길에 비가 내린다







5.jpg

김남조목숨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

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

사람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

 

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무려 연꽃처럼 죽어 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반만년 유구한 세월에

가슴 틀어박고 매아미처럼 목 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 이건

그 모든 하늘이 낸 선천(先天)의 벌족(罰族)이더라도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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