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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매우 시적인 배열
게시물ID : lovestory_901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07 09:56:2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유재영또 다른 세상

 

 

 

말간 귀를 세운

은사시나무가

비발디를 듣고 있다

야윈 바람은

가볍게 가볍게

발을 헛딛고

방금 숲에서 달려나온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있다

얼마를 버리고 나면

저리도 환해지는 것일까

오늘도나뭇잎에는

나뭇잎 크기의

햇살이 얹혀 있고

눈물에는 눈물 크기만 한

바다가 잠겨 있다







2.jpg

송수권적막한 바닷가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같이 밀물을 쳐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녘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 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3.jpg

이시영나무에게

 

 

 

어느 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 하는구나

내가 네 발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4.jpg

정호승가시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5.jpg

성미정매우 시적인 배열

 

 

 

어느 날 문득 책꽂이에 꽂힌 시집을 보니

 

붉은 방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좀팽이처럼

물길 아니라 내 무덤 푸르고

모자 속의 시들 잠언집 고슴도치의 마을

세속도시의 즐거움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매우 시적인 배열

길다랗고 섬세한 펜 같은 손을 가진

그를 칭찬했더니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삿짐 센터의 직원이 임의대로

꽂았을 뿐이라고

 

밝은 방에서

이 경우 누가 시인인가

무의식적으로 꽂았을 뿐인데도

매우 시적인 배열을 보여준

이삿짐 센터의 직원인가

매우 시적인 배열을 눈치 챈 이가 시인인가

이삿짐 센터의 직원의 존재를

알려준 그가 시인인가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이 매우 시적인 배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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