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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래 그게 나였지
게시물ID : lovestory_902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6/28 10:26:0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규리산그늘

 

 

 

먼산바라기만 하던 스님도

바람난 강아지며 늙은 산고양이도

달포째 돌아오지 않는다

자기 누울 묏자리밖에 모르는 늙은 보살 따라

죄 없는 돌소나무 밭 돌멩이를 일궜다

문득

호미 끝에 찍히는 얼굴들

절집 생활 몇 년이면 나도

그만 이 산그늘에 마음 부릴 만도 하건만

속세 떠난 절 있기나 한가

미움도 고이면 맛난 정이 든다더니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하필 그리워져서

눈물 찔끔 떨구는 참 맑은 겨울날







2.jpg

류시화가을 유서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 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







3.jpg

안도현살아남은 자의 슬픔

 

 

 

비닐 조각들이 강가의 버드나무 허리를 감고 있다

잘 헹구지 않은 수건처럼 펄럭거린다

 

몸에 새겨진 붉은 격류의 방향

물결무늬의 기억이 닮아 있다

모두들 한사코 하류 쪽으로 손을 가리킨다







4.jpg

김동명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5.jpg

이수진왜 그랬나요

 

 

 

길바닥에 누워버린 들꽃처럼

바람에 지쳐버린 나무처럼

짐도 없지짐도 없지

그 저 그저 살아온 거지

 

버릴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고

배 따뜻하면 만족하지

더 딘 더딘 아이처럼

발끝마다 가시가 솟아나도

울면 그만이지울면 그만이지

 

얼음 속에 눈 녹아 들어가듯

추운 마음 익숙하여

울 수도 없었지

그저 흉내 낸 거겠지

 

시계바늘 돌아가듯

익숙한 하루태엽들

버젓이 내게 감기며

하루하루 노래하며 지내는

베짱이 신세였지

 

그래 그게 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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