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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게시물ID : lovestory_90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7/12 09:44:3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후기불법 체류자들

 

 

 

소읍 변두리 처가(妻家)

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2.jpg

김남조그림엽서

 

 

 

여행지 상점가에서

그림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별달리 이름 환한

사람 하나 있어야겠다고

각별히 절감한다

 

이국의 우표를 붙여

편지부터 띄우고

그를 위해 선물을 마련할 것을

 

이 지방 순모실로 짠

쉐타 하나목도리 하나

수려한 강산이 순식간에 다가설

망원경 하나

유년의 감격

하모니카 하나

최소한 일년은 몸에 지닐

새해 수첩 하나

특별한 꽃의 꽃씨 잔디씨

여수(旅愁)서린 해풍 한 주름도 넣어

소포를 꾸릴 텐데

 

여행지에서

그림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불켠 듯 환한 이름 하나의 축복이

모든 이 그 삶에 있어야 함을

천둥 울려 깨닫는다







3.jpg

김명수동전 한 닢

 

 

 

오늘 낮차들이 오고 가는 큰길 버스 정류장에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길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육중한 버스가 멎고 떠날 때

차바퀴에 깔리던 동전 하나

누구 하나

허리 굽혀

줍지도 않던

테두리에 녹이 슨 동전 한 닢

 

저녁에 집에 오니 석간이 배달되고

그 산문 하단에 1단짜리 기사

눈에 띌 듯 띄지 않던

버스 안내양의 조그만 기사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그 소녀가

승강대에서 떨어져서 숨졌다는 소식







4.jpg

박현수탄생

 

 

 

먼 길을 걸어

아이가 하나우리 집에 왔습니다

건네줄 게 있다는 듯

두 손을 꼭 쥐고 왔습니다

배꼽에는

우주에서 갓 떨어져 나온

탯줄이

참외 꼭지처럼 달려 있습니다

저 먼 별보다 작은

생명이었다가

충만한 물을 건너

이제 막 뭍에 내렸습니다

하루 종일 잔다는 건

그 길이 아주

고단했다는 뜻이겠지요

인류가 지나온

그 아득한 길을 걸어

배냇저고리를 차려 입은

귀한 손님이 한 분우리 집에 왔습니다







5.jpg

박라연묘지가 아름다운 계절

 

 

 

우리가

너를 잊었는가 싶을 때

들판은 휘엉청초록 연두 노랑 갈색으로 흔들린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흔들린다

철길 너머 낮은 언덕

그 너머 낮은 산 위의 무덤들이 덩달아

제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온 것들을

예쁘게 예쁘게 익혀 가고 있는 계절

죽음이 놓인 자리마다 까치들은

분주히 날개를 턴다

싣고 온 소식들이 씨앗처럼 흩어질 때

우리도 마음 한구석에 한적한 무덤 하나 빚으리

무덤은 제각각 초록 연두 노랑의

초승상현하현달을 낳겠지

달들은 자라서 물의 아내가 되거나

은행나무의 은행잎이 되겠지

아직은......아직은......아무것도 될 수 없는

붉은 눈시울은 두고 온 고향 감나무 위

주렁주렁감빛이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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