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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따뜻하게 헤어지는 일이 큰일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0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8/30 14:53:19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복효근느티나무로부터

 

 

 

푸른 수액을 빨며 매미 울음꽃 피우는 한낮이면

꿈에 젖은 듯 반쯤은 졸고 있는 느티나무

울퉁불퉁 뿌리나무의 발등

혹은 발가락이 땅 위로 불거져 나왔다

군데군데 굳은살에 옹이가 박혔다

먼 길 걸어왔단 뜻이리라

화급히 바빠야 할 일은 없어서 나도

그 위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

그렇게 너와 나와는

참 멀리 왔구나 어디서 왔느냐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느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으며 하늘을 보는데

무엇이 그리 무거웠을까 부러진 가지

껍질 그 안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

 

때 아닌 낮 모기 한 마리

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

잡지 않는다

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다시 신발끈을 맨다

 

 

 

 

 

 

2.jpg

 

길상호희망에 부딪혀 죽다

 

 

 

월요일 식당 바닥을 청소하며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믿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

형광등에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오늘 탁자에바닥에 누워 있지 않은가

제 날개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속이 까맣게 그을리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사내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어쩌면

저 벌레들도 짜릿한 감전을 꿈꾸며

짧은 삶 걸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얇은 날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은 얼마나 큰 수렁이던가

쓰레받기에 벌레의 잔재 담고 있자니

아직 꿈틀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저 단말마의 의식이 나를 이끌어

마음에 다시 불 지르면 어쩌나

타고 없는 날개 흔적을 지우려고 나는

빗자루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3.jpg

 

홍윤숙추석

 

 

 

가랑잎 타는 냄새가 나는

어머니 굽은 등에서

빨간 열매가 한소끔 떨어진다

 

어머니는

열매를 익히고 타버리는

껍질인가 보다

 

풋콩까는 냄새가 나는

아이들 몸에서

이따금 바람에 튕기는

알밤소리가 난다

 

아이들은

햇볕에 타서

영그는 열맨가 보다

 

나도 지금은

여름에 타서 키만 남은 수수깡

꽃가루 같은 달빛을 묻히며

분주히 장지를 여는 바람이 된다

 

어디서

솔잎 찌는 향기

밤이 익는데

 

 

 

 

 

 

4.jpg

 

노천명오늘

 

 

 

무엇에 쫓기는 것일

막다른 골목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내가 쫓기는 것만 같다

 

나를 따르는 것은 빚쟁이도 아니요

미친개도 아니요

더더군다나 원수는 아니다

 

밤의 안식은 천년의 세월이 덮은 듯

아득한 전설

네거리 횡단 길에 선 마음

 

소음에 신경은 사정없이 진동되고

내 눈은 고달파 핏줄이 섰다

 

밤 천정의 한 마리의 거미가

보기 좋게 사람을 위협할 수도 있거니

 

무엇에 쫓기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으로 내가 쫓긴다

 

불안한 날들이 낯선 정거장 모양 다닥치고

털어 버릴 수 없는 초조와 우수가

사월의 신록처럼

무성한다

 

 

 

 

 

 

5.jpg

 

이문재칸나

 

 

 

따뜻하게 헤어지는 일이 큰일이다

그리움이 적막함으로 옮겨 간다

여름은 숨 가쁜데그래

그리워하지 말자다만 한두 번쯤

미워할 힘만 남겨두자

 

저 고요하지만 강렬한 반란

덥지만 검은 땅 속 뿌리에 대한

가장 붉은 배반칸나

 

가볍게 헤어지는 일은 큰일이다

미워할 힘으로 남겨둔

그날 너의 얼굴빛이 심상찮다

내 혀나의 손가락들 언제

나를 거역할 것이니

 

내 이 몸 구석구석 붉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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