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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오늘은 환승하지 않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906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9/21 19:49:1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be/Vaq7rZxJW-k

 

 

 

 

1.jpg

 

 

문현미, 노을




하루를 온전히 살다가

떠날 때는

잠시

실핏줄까지 젖도록

오색 눈물을 수채화처럼 뿌리고

묵묵히 사라지는

넉넉한 투혼

 

 

 

 

 

 

2.jpg

 

 

최문자, 환승




오늘은 환승하지 않았다

말라가는 잎들을 어디다 놓을지 몰라

몇 잎은 남기고

몇 잎은 떨어뜨리는

나무의 가을처럼

오늘

그의 나무로부터 떨어지고 나서

어디다 나를 놓을지 몰라

주문에 걸린 발목을 잡고

환승할 사당역을 통과했다

촘촘히 박힌 역들을 버리고

낯선 정왕역, 과수원 근처에서 내렸다

어둑한 가지에 못 참는 시간을 걸어놓고

흰 목책에 기대어

푸르다 못해 끝간 데서 붉어진

사과의 숙성을 헤아려봤다

푸르게 시작한 사과가

어디쯤 가다 피 흘릴 생각을 했을까

푸르기만을 고집했던 떫은 사과들은

다 어디가 죽었을까

사과를 안았던 꼭지마다

얼마나 어두운지 고통스런 내심이 통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환승하지 않았다

그를 버리고 피 흘릴 생각이 없다

떫은 맛, 푸른 사과 그 옆에 나를 놓겠다

 

 

 

 

 

 

3.jpg

 

 

양성우, 삶 속으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전혀 낯선 인연이 나를 이 거친 삶 속으로

밀어넣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내 운명과 맞서지 못하고

내 자신에게까지도 늘 진다

어쩌면 내가 걷는 이 길은

처음부터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줄곧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 것이다

온갖 더럽고 사나운 것들이

내게 오는 기쁨을 가로막을지라도

영원한 시간 위에서

사람으로 순간을 산다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4.jpg

 

 

강희근, 사람은




사람은 숨가쁘다가

앓다가

앓아서 이겨낼 도리가 없을 때

산 그림자처럼 죽음이 육신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개울물같이 투명한 한 줄의 유언을

말한다

사랑도 이와 같다

그러나

나는 사랑의 마지막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5.jpg

 

김종길, 꽃밭




꽃밭


말없이

긴절(緊切)한 목숨들이 고개 들고 있는 곳


아 한 여름 개인 오전을


제대로의 꽃다움을 뽐내듯

또는 수줍어하듯

열정적(熱情的)으로

또는 소담(素淡)하게

또는 애처롭게


저마다의 선명한 빛깔과 모양과 몸짓을 지니고


혹은 한 포기 외로이

혹은 몇 포기씩 정다웁게

한결같이 맑고, 아름답고, 싱싱하게


모두 다 실상 멋있게


혹은 며칠을

혹은 하룻만에


시새우듯

겨루듯 피었다가 눈물도 없이 가버린 것들, 꽃, 꽃, 꽃들


잠시 못 견딜 부러움으로

황홀히 바라다 본


아 그것은 눈부신 교향악(交響樂), 그 한 분절(分節)에

사실은 하잘 것 없는 나의 관조(觀照)의 한 분절(分節)에


외출(外出)하기 전 짐짓 웃음 지으며

너에게 흰 모자를 벗어든다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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