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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를 떠날 수 없어 날아갈 수가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907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3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0/29 11:30:1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양중해, 연




푸른 하늘 아득히

한없이 날아가고 싶어도

너를 떠날 수 없어

날아갈 수가 없다


내 무슨 전생의 인연으로

너의 얼레에 이렇게 메이어

네가 실을 늦추어 주면

나는 바람을 타고 둥둥 솟아오르다가


때론 이대로

아주 너를 떠나가는가 하다가도

네가 얼레를 잡아 감으면

다시 너에게로 감기어 들어오는 나


터진 가슴의 앙상한 늑골 사이로

문풍지를 올리듯 찬바람에 스치우며

너의 얼레 하나로

감기었다 풀리었다 하고 있으니


높고 넓은 하늘이 저만치 푸르러도

나의 하늘은 너와의 거리일 뿐

해가 빛나도 별이 반짝여도

나는 늘 너로부터 이만쯤 떠 있어야 한다


너의 얼레에 매여 있는

이 실오라기가 끊기는 자유가

무서워 무서워

늘 허공에서 떨고 있는 나의 삶이다

 

 

 

 

 

 

2.jpg

 

황규관, 어머니의 성모상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대낮에도 어두운 고향집에 가면

방 한쪽에 성모상과 촛불이 서 있다

가만 보면 살짝 팔짱을 껴보고 싶은 여인 같은데

어머니는 무슨 기도를 하시려고

방에다 성모상까지 모셔놔야 했을까

대한성서공회간 공동번역성서도 더듬더듬 읽는양반이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사연 같은 걸

아직도 품고 사신다는 얘기 같아

마당에 넌 빨간 고추만 바라보곤 했다

나는 신(神)을 부수며 살았고

어머니는 그걸 받아들인 것이다

당신의 말하기 힘든 시절이

유전되고 증식된다는 걸

때로는 벗어나려 몸부림도 쳤다는 걸

어머니는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나는 그 앞에만 앉으면 유순해진다

어느 날은 세상에게, 장대비 쏟아지던 길 위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성모상 앞이 아니라면 절대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다시 마음을 뿌드득 움켜쥐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아직껏 입술 달싹이는 어머니의 기도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3.jpg

 

정호승, 포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4.jpg

 

김정환, 바퀴벌레




바퀴벌레 한 마리가 천정에서 떨어져

무참히 잠든 내 영혼의 이마를 때린다

달아난다, 잡히지 않으려고

바퀴벌레도 아닌 밤중, 바퀴벌레는 그도 홀로 깜깜해

저는 반짝이는

슬픔이라는 듯이

고요하고 그러나 억센

털난 다리로 씩씩거리며

달아난다

소스라쳐 내가 놀라는 것은

아직도 내게 돌려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소름끼치는

동산 부동산

바퀴벌레는 내 이마에서 떨어져

털난 다리는 갑자기 커 보이고

내 몸통보다도 커진 다리의 근육이

무식하게 일자무식하게

내 신혼의 벽지 위를 짓누르고 다닌다

어떤 소중한 두려움 같은

그러나 그 자체로는 슬픈

흉악한 사랑의 깜깜 절벽

소름끼칠 여유도 주지 않는

그러나 바퀴벌레는 숨가쁜 진실이다

 

 

 

 

 

 

5.jpg

 

김안, 거의 모든 아침




거의 모든 아침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당신의 눈동자 속에는 침묵이 가득한 채

한 걸음의 높이로 떠다니는 가볍고 둥근 돌들이

당신의 하얀 발 위에 앉아 천천히 모래가 되어갈 때

당신이 바이올린처럼 작게 섬세하게 헛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거의 모든 아침은 당신이었다가 당신이 아니었다가

음률에서 나온 투명한 불꽃은

나뭇가지를 두드리고 가볍게 나뭇잎 떨어져 내리고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 하나가 고요히 날아오르고

거의 모든 아침들 속에서

당신이 내게 건네준 몇 개의 언어들이 선명히 줄을 그으며 사라져갈 때

벽 속을 달리던 사내들이 당신의 눈동자를 열어 당신의 시선으로 성냥불을 그을 때

거의 모든 아침은 당신이었다가 당신이 아니었다가

거의 모든 아침

당신은 내게 존재하다가 존재하지 않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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