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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10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24 10:36:5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은림, 태양중독자




태양을 섬기는 중이다

장엄한 빛들을 쏘아대며 돌고 도는 저것에게 환장하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태양에게


사육당하는 중이다

엉겨 붙는 중이다

한 번도 나를 호명한 적 없는 태양에게


부글부글 대드는 중이다

막무가내 달려드는 중이다

내 시야의 전부이지만 단 한 번도 응시한 적 없는 태양에게

저, 붉은 것에게


그러니, 이제는 말하자

왜 아직 나는 증발하지 못했는가

왜 아직 고여서 출렁이는가

갈증은 왜 내게 고통이 아닌가


데인 상처는 너무 쉽게 흉터가 된다

태양은 악착같이 이글거리고

너는 또다시 증발되는 중이지만

 

 

 

 

 

 

2.jpg

 

염명순, 꿈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이고 나면

어김없이 아프다

아버지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어요

아버지의 쓸쓸한 생애는

부산 근교 함경남도 단천 동산에 묻히셨어요

얘야, 고향도 떠나왔는데 어딘들 못 가겠느냐


꿈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

다시는 시를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 꿈의 머리맡에서 누가

이마를 짚어주는 듯했는데

밥 많이 먹으라고 언니의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3.jpg

 

최두석, 누에 이야기




누에의 집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고개를 들고 정지한 모습을 느낄 뿐이다

몇 달이고 계속되던 잠에서 깨는 날

다만 깨어 있으려는 노력으로 꿈틀대지만

곧잘 다시 잠에 취하기 마련

그러나 깨어 있는 지혜를 깨친 누에는

계속 입을 놀려 이야기의 실을 뽑아낸다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스스로 엉켜 집을 짓고

과연 희한한 집짓기를 마쳤을 때

자신은 어느새 집 속에 갇혀 있다

 

 

 

 

 

 

4.jpg

 

정군칠, 무릎 꿇은 나무




모슬포 바닷가, 검은 모래밭

서쪽으로 몸 기운 소나무들이 있다

매서운 바람과 센 물살에도 속수무책인 나무들

오금 저리는 앉은뱅이의 생을 견딘다

저 록키산맥의 수목한계선

생존을 위해 무릎 꿇은 나무들도

혹한이 스며든 관절의 마디들을 다스린다

곧 튕겨져 나갈 것처럼 한쪽으로 당겨진 나이테의 시간들이

공명의 가장 깊은 바이올린으로 다시 태어난다

곧게 자라지 못하는 나무들의 뼈

그 흰 뼈의 깊은 품이

세상의 죄스러운 것들을 더욱 죄스럽게 한다

 

 

 

 

 

 

5.jpg

 

조태일, 소멸




산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 점 티끌도 안 보이게

나를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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