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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우리는 한 번쯤 이별을 했던가 싶다
게시물ID : lovestory_911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2/30 21:31:0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오영해,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 몇 닢 넣고

너에게로 가서

망설임 끝에 문을 두드리면

반복되는 신호음이 너의 부재를 알려

흔적도 없이 나 돌아서면

네 방은 다시 고요로 잠잠하고

너와 나는 다시 거리를 회복한다


네가 문을 열고 수화기를 들어도

손가락만 자유로운 벙어리로 나서면

누구세요 저편에서 계속 물으며

몇 개의 이름을 늘어놓는데

낯선 이름 사이에 내가 없다

너와 나 사이 찰카닥 문을 닫고

네 생각 밖에 나는 다시 선다

입구를 알 수 없는 벽

우리는 한 번쯤 이별을 했던가 싶다

 

 

 

 

 

 

 

2.jpg

 

이성선, 큰 노래




큰 산이 큰 영혼을 가른다

우주 속에

대붕(大鵬)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설악산 나무

너는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산정(山頂)을 바라보며

몸이 바위처럼 부드럽게 열리어

동서로 드리운 구름 가지가

바람을 실었다. 굽이굽이 긴 능선

울음을 실었다

해지는 산 깊은 시간을 어깨에 싣고

춤 없는 춤을 추느니

말없이 말을 하느니

아, 설악산 나무

나는 너를 본 일이 없다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

밤에 길을 떠나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파문도 없는 밤의 허공에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너를 보았다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을 딛고

거인처럼 서서 우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 안에 있다

 

 

 

 

 

 

3.jpg

 

김영재, 어머니




전화기 속에서 어머니가 우신다

니가 보고 싶다 하시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더욱 더

서러워하실 어머니가 안쓰러워


어릴 적 객지에서 어머니 보고 싶어 울었다

그때는 어머니

독하게 울지 않으셨다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이겨내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고향이 객지로 변해 버렸다

어머닌 객지에서

외로움에 늙으시고

어머니

날 낳던 나이보다, 내 나이 더 늙어간다

 

 

 

 

 

 

4.jpg

 

박형진, 입춘단상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5.jpg

 

최하림, 밭고랑 옥수수




내 눈이 너를 보고

내 귀가 너를 듣는 동안에

감추인 아침이 차츰차츰 열리고

감당할 수 없이 세상이 밝아온다

경이로운 아침이여 새벽부터 길들은

사립을 나서서 숨소리 깊은 들로 간다

내가 처음의 나그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몇 사람째 이슬을 털고 갔다

그들의 발걸음이 들을 깨우고 비린내음 물씬한

밭고랑 옥수수들을 흔든다 옥수수들이

눈 비비며 일어나 제 모습 본다

우리도 어느 날, 들을 가면서 우리가 지나는 모습

볼 것이다 긴 낫 들고, 그림자 드리우며

존재하는 것들이 밝게 얼굴 드러낼 것이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랑에서, 나는 잠시, 햇빛에 싸여

걸음이 미치지 않는 곳의 신비를 본다

가려고 하지 않는 길들은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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