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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마음 없는 말일 수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911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1/02 13:46:3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서림, 오존주의보가 내려도




더 이상 내 시가 꿈꿀

고향은 없다. 자연조차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속에만 존재한다

더 이상 내 시에 성스런 힘 실어줄

자본의 가속도에 브레이크 걸어줄 민중도 없다

오랫동안 물을 갈지 않아 썩어가는

우울한 이 수족관 도시

빠져나갈 껀수도 길도 없다

오존주의보가 내려도

폐에 구멍이 뚫려도

남극 뻥 뚫린 오존층 구멍이

내 머리 위까지 덮친들

땡볕에 드러난 지렁이처럼

말라 비틀어지며 기어갈 수밖에 없다

황폐해진 여름날, 가로수 없는

달구어진 콘크리트 바닥을

아황산가스 오존을 마시며 삭여내며

모질게 독하게 싹 틔워야 한다

지구가 돌아가는 데까지

사는 데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 시는

 

 

 

 

 

 

2.jpg

 

함민복, 죄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날을 세워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죄의 날

빛나게

푸르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

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

 

 

 

 

 

 

3.jpg

 

김남주, 창살에 햇살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4.jpg

 

신석정, 그 마음에는




그 사사스러운 일로

정히 닦아온 마음에

얼룩진 그림자를 보내지 말라


그 마음에는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꽃을 피게 할 일이요


한 마리

학으로 하여

노래를 부르게 할 일이다


대숲에

자취 없이

바람이 쉬어 가고


구름도 흔적 없이

하늘을 지나가듯

어둡고 흐린 날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받들어


그 마음에는

한 마리 작은 나비도

너그럽게 쉬어 가게 하라

 

 

 

 

 

 

5.jpg

 

이하석, 깊이에 대하여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마음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는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이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깊이를 다른 누가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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