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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여전히 우리는 흔들려야 하지 않은가
게시물ID : lovestory_91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1/07 00:29:3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송승환, 레코드 플레이어




사과가 있다


푸른 사과

거의 둥글고 파란 사과

가까스로 둥글고 연푸른 사과

기어이 둥글고 작은 초록 사과


쟁반에 담긴 청록 사과


물감과 물감을 섞는다

푸른색에서 노란색까지

노란색에서 푸른색까지


물을 더 섞는다


사과가 있다

 

 

 

 

 

 

2.jpg

 

김휘승, 하룻밤




눈먼 밤에도 꽃피우는 나무야 환하지

꽃빛 아득해질 때까지 넓게 살지


꿈자리까지 접는 밤

잠결에도 꽃피우는 하룻밤

 

 

 

 

 

 

3.jpg

 

김일태, 바람꽃




쓸쓸하겠거니 생각하지 마라

바람을 불러 흔들리면서

관심을 모으거니 생각하지 마라

살아 있는 한

여전히 우리는 흔들려야 하지 않은가


갈기 꺾였다고

뭐 그리 눈물날 일인가

모두의 의식 속에서 버려질수록

자유로워지는


이 작은 버팀이

편안함에 기댄 저항의 몸짓인 것을

너들이 알까마는

 

 

 

 

 

 

4.jpg

 

김참, 비




어둠이 내리는 낡은 건물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고

현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비에 젖는다

어두워진 건물 복도를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견디며

복도 벽에 붙어 있는 회색 나방 두 마리

복도 끝에서 어둠을 뚫고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비에 젖는 밤이다

어두운 방 전축 위에는 검은 레코드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아스팔트 위로 비에 젖은 회색 나방들이 흘러간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자꾸 굵어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 서서

나는 어둠에 젖고 있는 유리창에 가득한 빗줄기를 본다

 

 

 

 

 

 

5.jpg

 

조영석, 토이 크레인




사내는 소주의 목뼈를 움켜쥐고 있었다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닢을

얼어터진 손바닥 위에 펼쳐보았다

녹슨 입술을 굳게 다문 구멍가게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앉은뱅이 크레인 앞에서

사내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눈꺼풀 없는 인형들이 크레인의 뱃속에서

불면의 눈알들을 치뜨고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스름의 날들

사내는 단 한 번도 등 푸른 지폐였던 시절이 없었다

동전 속에 입김을 불어넣고

크레인의 몸속으로 몸소 들어가는 사내

허공을 향해 허깨비를 잡으러 손을 허우적거렸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것이

어디 쓸모없는 것들뿐이었겠는가

사내는 크레인 몸속으로 들어가

푹신한 인형들 속에서 잠이 들었다

크레인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목뼈가 부러진 소주 한 병이

조용히 맑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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