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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종일 서서 시를 쓴다
게시물ID : lovestory_912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1/18 22:44:2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용악, 어둠에 젖어




마음은 피어

포기포기 어둠에 젖어


이 밤

호올로 타는 촛불을 거느리고


어느 벌판에로 가리

아른거리는 모습마다

검은 머리 향그러이 검은 머리

가슴을 덮고 숨고 마는데


병들어 벗도 없는 고을에

눈은 내리고

멀리서 철길이 운다

 

 

 

 

 

 

2.jpg

 

이사라, 시간이 지나간 시간




늦은 밤 마침내 껍질 단단한 은행을 깐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곰팡이에게 반쯤 먹힌 은행의 속살을

조금씩 뜯어낸다

몇 달 동안 선반 위에서

뻣뻣하게 말라가는 저의 주검을 알리려 했는지

내 손톱 끝이 짓무른다

인연의 끝도 모른 채

나는 선반 같은 세상의 밑을 무심히 지나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이 한밤

씻기고 뜯기는

저 속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건지

버려진 속살 조각들이

수챗구멍 속의 어두운 길을 따라

웅얼웅얼 달려간다


어디서쯤

뿌리 튼튼한 은행나무로

하얀 각질 속에 담겨

다시 태어나려고

이렇게 달려가는지


어떤 밤은

시간이 지나간 시간을 씻으면서

맑아지고 싶다

 

 

 

 

 

 

3.jpg

 

장석남, 오래된 정원




나는 오래된 정원 하나를 가지고 있지

삶을 상처라고 가르치는 정원은

밤낮없이 빛으로 낭자했어

더 이상은 아물지도 않았지

시간을 발밑에 묻고 있는 꽃나무와

이마 환하고 그림자 긴 바윗돌의 인사를 보며

나는 그곳으로 들어서곤 했지 무성한

빗방울 지나갈 땐 커다란 손바닥이 정원의

어느 곳에서부턴가 자라나와 정원 위에

펼치던 것 나는 내

가슴에 숨어서 보곤 했지 왜 그랬을까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들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4.jpg

 

황다연, 고독삼매




먼 스무 살 허망의 숲길

흰 사과꽃 흩어진다

눈썹 찡그린 바람 일어 또 하루가 스러지고

새떼들 울음소리가 노을 속으로 멀어진다


뒷걸음 칠 줄 모르는 세월

불가마에서 녹는데

내 이름 누가 불러도 들리지 않는 무아의 극치

만지면 피가 묻어나는 생의 한가운데서

 

 

 

 

 

 

5.jpg

 

김용만, 날마다 시를 쓴다




시를 쓴다

종일 서서 나는 시를 쓴다

일 년 열두 달

목장갑 까뒤집어 땀을 닦고

손 비비며

망치 움켜쥐고 시를 쓴다


온몸으로 시를 쓴다


책상도 없이

종이도 없이

종일 서서 시를 쓴다


몸뚱이에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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