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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환하게 어둠 켜고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913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2/17 18:15:0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유경, 일몰을 보며




일몰 하나를 보려고 안면도 바닷가에 선다

많은 일 저지르고, 누구들에겐 마지막 날 되어

빨간 구름 몇 개 남기고 해가 진다

이윽고 빈 바다로 저녁 몰려가는 것 본다

사라진 해는 지금 어느 육지에선 더운 아침 비추거나

바다 위에선 먹구름 뒤 하얀 정오거나 하겠다


하루를 밝힌 연안도시

환하게 어둠 켜고 있다

 

 

 

 

 

 

2.jpg

 

김록, 욕망에 대한 욕설과 매혹




그것은 연민과 같은 하나의 포기

끓어오르는 기세에 대해서 굴하는 것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기처럼 누워서 침이나 흘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코 세련된 게 아니라고 욕설을 퍼붓거나

관성을 가진 단편들에 매혹을 느끼는 것은

욕망 이상의 비밀

재미로 말하자면, 진노하는 욕망 속에는

서글픈 욕망 속에는

감수성 따위의 우아한 거짓

탐구심 따위의 치열한 거짓

개체의 자유로움 따위의 파괴적인 거짓이 있다

매혹 때문에 당하지 않겠다는 건

욕망의 과제가 아니라서

욕망에 대한 욕설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린다

 

 

 

 

 

 

3.jpg

 

허영자, 하늘




너무

맑은 눈초리다


온갖 죄는

드러날 듯


부끄러워

나는

숨고 싶어

 

 

 

 

 

 

4.jpg

 

송재학, 저건 창이야




모래톱 해안선에 누우면

바다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꾸물꾸물 움직이는 창이다

나는 지금 창의 바깥쪽에서

안으로 실려가는 목록들을 헤아리고 있다

햇빛이라는 백열등의 숫자가 가장 많다

그 숫자는 깨끗한 종소리를 내고 있다

사람의 냄새를 씻으려는 백열등이다

죄의식의 불빛이

바다의 중심에서 아침저녁 켜진다고 생각해보라

심해어의 지느러미가 심지를 돋우면

불빛은 햇빛을 주목해온 사람과 다시 종소리로 연결된다

 

 

 

 

 

 

5.jpg

 

류인서, 어둠의 단애




저문다는 것, 날 저문다는 것은

마땅히 만상이 서서히 자신의 색을 지우며

서로의 속으로 스미는 일이라야 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 가는 일이라야 했다

그렇게 한 결로 풀어졌을 때

흑암의 거대한 아궁이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야 했다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앉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개울은 개울의 어둠을

아카시아는 아카시아의 어둠을 틀어 안고

바윗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제 어둠의 단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한 어둠을 손 잡아주는

다른 어두움의 손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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