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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게시물ID : lovestory_913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2/21 19:10:3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신혜경, 사람




한문 수업 시간

정년퇴임 앞둔 선생님께

제일 먼저 배운 한자는

옥편의 첫 글자 한 일(一)도 아니고

천자문의 하늘 천(天)도

그 나이에 제일 큰 관심사였던

사랑 애(愛)는 더더욱 아니고

지게와 지게작대기에 비유한 사람 인(人)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사람 인(人)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아슬하다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2.jpg

 

하영순, 감사와 행복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길을 가다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담을 수 있어

나는

내 손에게 감사한다


언덕길 오르는

힘든 자에게

손잡아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어

나는

나에게 감사 한다


내가 있어 세상이 있고

세상이 있어

내가 존재한다는 이 사실에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3.jpg

 

나희덕, 비 오는 날에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 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4.jpg

 

송승환, 마이크




빈 곳의 중심으로 응축되는 그녀의 말은 사물이다

사물들이 내 육체를 관통한다

내 입술에서 터져 나가 검은 무대의 벽면에 부딪친다

나는 부서지는 소리의 잔향을 듣는다

나는 말한다

공중에 풀어지는 푸른 잉크의 언어

다시 들린다

 

 

 

 

 

 

5.jpg

 

고두현, 지하철에서




잘못 내린 역에서 돌아가려고

남들 다 빠져 나온 출구

되짚어 들어가는데

이 길 먼저 지나간 사람들

뒷모습이 하나씩 지워진다


여기까지 나를 밀고 온 세월과

예고 없이 길을 막던 차단기

앞만 보고 걸어온 삶이

이토록 가볍게 지워지다니


터널 지날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던 얼굴들도

아하

거미줄 같은 땅 밑 길

몸 낮추고 보폭 줄이며

느리게 걷는 법 가르쳐주려고

날마다 거울 저 쪽에서

그렇게 손짓하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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