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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게시물ID : lovestory_915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3/24 11:17:1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도종환, 비 내리는 밤




빗방울은 장에 와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레가 멀다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다 모조리 씻겨 내려가고 없는 밤

천리 만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

 

 

 

 

 

 

2.jpg

 

박태일,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울산으로 부산으로 떠나고

잘 살아야지 못 먹고 못 입힌 죄로

사십 오십 줄엔 재산인 양 너희를 바랬어도

자식도 자라면 남이라 조심스럽고

어제는 밤실 사돈댁이 보낸 청둥오리 피를 받으며

한목숨 질긴 사정을 요량했다지만

무슨 쓰잘 데 있는 일이라고

밤도와 기침까지 잦다


몸 성하거라 돈은 정강키 쓰되 베풀 때는 헤푸하거라

누이는 자주 내왕하느냐 큰길 박의원에서 환 지어 보낸다

술 먹는 일도 사업인데 몸 보하고 먹도록 해라


그리고

 

 

 

 

 

 

3.jpg

 

정진규, 옛날 국수 가게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 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4.jpg

 

손택수, 지렁이




잠깐 스쳐 가는 소낙비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아스팔트가 녹아나는 도로변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너는 어쩔 수 없는 미물이다, 생각하는 순간

지렁이 한 마리 밟지도 않았는데 꿈틀한다

언젠가 불에 데인 흉터처럼, 열이 많은

내 몸을 아스팔트 바닥 삼아 기고 있는 흉터처럼

속살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무리들

제 안의 남은 수분 속에

한여름의 열기를 다 빨아들일 듯

끝없이 말라비틀어져 가는 무리들

한방에선 해열제로 쓴다고 했던가

열 먹고 죽어 열을 푸는 약이 된다고 했던가

이열치열 지극히 뜨거워져서 아픈 몸을 서늘하게 식히는 것

어디 그것이 한방에서만의 일이겠는가마는

마디마디 몸을 지지며 염천을 향해 기어간다

회초리 자국 같은 붉은 화상 자국이 꿈틀꿈틀

내 앞의 길을 쓰라리게 휘감고 있다

 

 

 

 

 

 

5.jpg

 

전영관, 주소록을 다시 만들며




해마다 정월이면

수첩을 사서

주소록을 다시 만든다

출석을 부르듯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생각한다

버려지는 이름들

버려지는 주소와 전화번호

새로 올리는 이름들

새로 올리는 주소와 전화번호

누군가도 내 이름을 이렇게 버리고 있겠지

누군가도 내 이름을 이렇게 새로 올리고 있겠지

버려지지 않으려고

갈림길에서 떨고 있던 이름

다시 끼워 넣으면

불씨 한 점 가슴에 안은 듯

내 두툼한 수첩 주소록 호주머니가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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