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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 돌아갈 것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16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4/25 19:51: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문재, 도보순례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 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2.jpg

 

양성우, 하루가 천날 같아도




네 마음이 너무나도 어둡구나

네 가슴을 돌같이 누르고

네 눈을 구름같이 가리는 것이

많으니

네 마음이 몹시 무겁고

숲처럼 아직도 그늘이 깊구나

사는 것 같지도 않은 네 삶속에서

겹으로 쌓인 가시 위에

날마다 거듭하여 네 몸을 던지고

넋마저 벼랑 끝에 흩날리느냐

그렇지만 은빛 물결 출렁이는

눈물의 강에

네 운명의 작은 배를 띄우지 마라

한 가닥 거친 바람에

네 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네 모든 하루가 천날 같아도

 

 

 

 

 

 

3.jpg

 

안상학, 벼랑의 나무




숱한 봄

꽃잎 떨궈

깊이도 쟀다

하 많은 가을

마른 잎 날려

가는 곳도 알았다

머리도 풀어헤쳤고

그 어느 손도 다 뿌리쳤으니

사뿐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4.jpg

 

강은교, 빗방울 셋이




빗방울 셋이 만나더니

지나온 하늘

지나온 구름덩이를

생각하며 분개하더니

분개하던 빗방울 셋

서로 몸에 힘을 주더니

스스로 깨지더니

침 크고 아름다운

물방울 하나가 되었다

 

 

 

 

 

 

5.jpg

 

강연호, 신발의 꿈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차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해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밟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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