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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늘 너로부터 이만쯤 떠 있어야 한다
게시물ID : lovestory_917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5/03 20:33:2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지웅, 사흘




문상객 사이에 사흘이 앉아 있다

누구도 고인과의 관계를 묻지 않는다

누구 피붙이 살붙이 같은 사흘이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져 있다

눈코입귀가 눌린 사람들이

거울에 납작하게 붙어 편육을 먹는다

사흘이 빈소 돌며 잔을 채운다

국과 밥을 받아놓고 먹는 듯 마는 듯

상주가 사흘을 붙잡고 흐느낀다

사흘은 가만히 사흘 밤낮 안아준다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

사흘 뒤 종이신 신고

불속으로 걸어가는 사흘이 있다

 

 

 

 

 

 

2.jpg

 

서수찬, 갈매기 떼




해변에 갈매기 떼가

내려앉아 있다

사람이 다가오자

일제히 날아오른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서로

부딪칠 만도 한데

바닥에는 부딪쳐

떨어져 내린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다

오밀조밀 틈도 없이 모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날개를 펼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었는데

실상은 갈매기들은

옆 갈매기가 날개를 펼

공간을 몸에다

항상 숨기고 있었다

 

 

 

 

 

 

3.jpg

 

최영미, 인생




달리는 열차에 앉아 창 밖을 더듬노라면

가까운 나무들은 휙휙 형체도 없이 도망가고

먼 산만 오롯이 풍경으로 잡힌다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으면

겨울을 물리친 강둑에 아물아물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시간은 레일 위에 미끄러져

한 쌍의 팽팽한 선일 뿐인데


인생길도 그런 것인가

더듬으면 달음치고

돌아서면 잡히는

흔들리는 유리창 머리 묻고 생각해본다


바퀴소리 덜컹덜컹

총알처럼 가슴에 박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아직도 못다 한 우리의 시름이 있는

가까웠다 멀어지는 바깥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하늘이라고 그러던가

 

 

 

 

 

 

4.jpg

 

양중해, 연




푸른 하늘 아득히

한없이 날아가고 싶어도

너를 떠날 수 없어

날아갈 수가 없다


내 무슨 전생의 인연으로

너의 얼레에 이렇게 매이어

네가 실을 늦추어 주면

나는 바람을 타고 둥둥 솟아오르다가


때론 이대로

아주 너를 떠나가는가 하다가도

네가 얼레를 잡아 감으면

다시 너에게로 감기어 들어오는 나


터진 가슴의 앙상한 늑골 사이로

문풍지를 울리듯 찬바람에 스치우며

너의 얼레 하나로

감기었다 풀리었다 하고 있으니


높고 넓은 하늘이 저만치 푸르러도

나의 하늘은 너와의 거리일 뿐

해가 빛나도 별이 반짝여도

나는 늘 너로부터 이만쯤 떠 있어야 한다


너의 얼레에 매여 있는

이 실오라기가 끊기는 자유가

무서워 무서워

늘 허공에서 떨고 있는 나의 삶이다

 

 

 

 

 

 

5.jpg

 

이시영, 무늬




나뭇잎들이 포도 위에 다소곳이 내린다

저 잎새 그늘을 따라 가겠다는 사람이 옛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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