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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누군가를 애끓게 사랑했던 기억도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918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5/15 18:23:4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창기, 시의 시대




라면이 끓는 사이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무정란이다

껍데기에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생산일자가 찍혀 있다

누군가 그를 낳은 것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애비도 없이

그가 누굴 닮았건, 그가 누구이건

인 마이 마인드, 인 마이 하트, 인 마이 소울을 외치면

곧장 가격표가 붙고 유통된다

소비는 그의 약속된 미래다

그는 완전한 무엇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누군가를 애끓게 사랑했던 기억도 없다

그런데 까보면 노른자도 있다

진짜 같다

 

 

 

 

 

 

2.jpg

 

박두순, 처음 안 일




지하철 보도 계단 맨바닥에

손 내밀고 엎드린

거지 아저씨

손이 텅 비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도

빗방울 하나 움켜쥐지 못한

나뭇잎들의 손처럼


동전 하나 놓아줄까

망설이다 망설이다

그냥 지나가고


내내

무얼 잊어버린 듯

집에 와서야

가슴이 비어 있음을 알았다

거지 아저씨의 손처럼


마음 한 귀퉁이

잘라 주기가 어려운 걸

처음 알았다

 

 

 

 

 

 

3.jpg

 

심훈, 독백




사랑하는 벗이여

슬픈 빛 감추기란 매 맞기보다도 어렵소이다

온갖 설움을 꿀꺽꿀꺽 참아 넘기고

낮에는 히히 허허 실없는 체 하건만

쥐죽은 듯한 깊은 밤은 사나이의 통곡장이외다

사랑하는 벗이여

분한 일 참기란 생목숨 끊기보다도 힘드오이다

적덩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가슴의 불길을

분화구와 같이 하늘로 뿜어내지도 못하고

청춘의 염통을 알콜에나 젖 담그려는

이놈의 등어리에 채찍이라도 얹어 주소서

사랑하는 그대여

조상에게 그저 받은 뼈와 살이어늘

남은 것이라고는 벌거벗은 알몸뿐이어늘

그것이 아까와 놈들 앞에 절하고 무릎을 꿇는 나는

샤일록보다도 더 인색한 놈이외다

쌀 삶은 것 먹을 줄 아니 그 이름이 사람이외다

 

 

 

 

 

 

4.jpg

 

서정태, 들국화




흰옷 입은 채 들길 가다가

먼 먼 훗날

만나자 언약한 꽃이여


기다림이 초조하고 안타깝기로

거기에 혼자서 피다니


가슴 뛰던 젊음의 여름날이 지나

서릿발 같은 이 벌판에

그리움에 지친 꽃


나도

이제는 마지막 눈물짓는 날

들국화

그대 곁에 살란다

 

 

 

 

 

 

5.jpg

 

김경린, 빛나는 광선(光線)이 올 것을




하이얀 기류(氣流)를 안고

검은 층계에 올라서면

거꾸로 떨어지는 애정(愛情)과 함께

아스러히

부서지는 오후의 그림자가 있었다


말없이

찌푸러져 가는 나의 시야에

날카로운 눈초리들은

날로 무성하고

가늘어져 가는

국제열차의 폭음이 지나간다


다감(多感)한 지역에

푸른 계절이 오면

잊혀진 사람아

검은 층계 위에

흰 발자욱을 따라

빛나는 광선(光線)이 올 것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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