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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추억 한 잔으로 남았다
게시물ID : lovestory_92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6/21 22:59:1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손택수, 목련 전차




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 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개인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 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 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 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 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려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동력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 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 밤을 보내신 동래 온천이 나온다


 

 

 

 

 

2.jpg

 

문효치, 부용묘




그녀가 묻히고

그녀의 시와 거문고도 묻히고

그리고 땅 위에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이왕이면

상수리나무들은 가지를 내려

그녀를 흔들어 깨운다


안개가 햇빛에 섞이고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고

때로는 붓꽃도 핀다


이끼, 푸른 빛 하늘에 바르고

청설모도 꿈속에 달 들여놓고

이렇게들 그녀를 일으킨다


땅의 문을 열고

가야금을 퉁기며 그녀가 온다


천안 광덕사 뒤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

 

 

 

 

 

 

3.jpg

 

이수익, 밥보다 더 큰 슬픔




크낙하게 슬픈 일을 당하고도

굶지 못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슬픔일랑 잠시 밀쳐두고 밥을 삼켜야 하는 일이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밥을 씹어야 하는

저 생의 본능이

상주에게도 중환자에게도 또는 그 가족에게도

밥덩이보다 더 큰 슬픔이 우리에게 어디 있느냐고

 

 

 

 

 

 

4.jpg

 

김지향, 추억 한 잔




꿈통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열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이 굳은 결의 앞에

기억의 스크린이

책장처럼 넘어간다


스크린 한 토막 뚝, 잘라내어

가슴의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끓인다

허름한 삶 한 자락이

조청처럼 졸아들어

추억 한 잔으로 남았다


한 잔 속에 가라앉아 타고 있는

비릿한 추억의 눈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꿈통에 박힌 대못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성급한 나의 결의를

저항이나 하듯이

 

 

 

 

 

 

5.jpg

 

김행숙, 흐르는 강물처럼




물을 움켜쥐고 싶었니

물고기를 움켜쥐고 싶었니

왼손도 오른손도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물이 뚝뚝 떨어져서 빈손임을 알릴 때


손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목록을

손으로 쓰거나 손으로 꼽는다

열 손가락으로 모자랄 때

그중에서 몇 개는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너의 손가락과 나의 손가락을 더하면 스무 개

그러면 몇 개를 더 잊어버리겠지

이런, 이러다간 다 까먹고 멍청이가 되고 말겠다


우리는 강물에 손을 담그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한다

강물은 흐르고 손은 흐르지 않는다

강물과 같은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나란히 나란히 물의 건반을 두드리는

우리의 손같이 희미한 것들은 무엇,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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