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그렇게 믿고 기다린 것, 패착이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92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7/12 19:09:3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기림, 화물자동차




작은 등불을 달고 굴러가는 자동차의 작은 등불을 믿는

충실한 행복을 배우고 싶다


만약에 내가 길거리에 쓰러진 깨어진 자동차라면

나는 나의 노트에 장래라는 페이지를 벌써 지워버렸을 텐데


대체 자정이 넘었는데

이 미운 시를 쓰노라고 베개 가슴을 고인 동물은

하느님의 눈동자에 어떻게 가엾은 모양으로 비칠까

화물자동차보다 이쁘지 못한 사족수(四足獸)


차라리 화물 자동차라면

꿈들의 파편을 거둬 심고

저 먼 항구로 밤을 피하여 가기나 할 터인데

 

 

 

 

 

 

2.jpg

 

고정희, 서시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른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며,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주네, 산


이승이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움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에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네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주네, 산산산


저 역사의 물레에 혁명의 길을 잣듯

사람은 손잡아 서로 사랑의 길을 잣는 것일까

다시 넘어가야 할 산길에 서서

뼈 속까지 사무치는 그대 생각에 울면, 거기

내 사랑의 눈물 받아

 

 

 

 

 

 

3.jpg

 

백무산, 숲




비 개인 숲이 옷을 벗는다

터진 구름 사이

바람 몇 점 푸르게 일더니

새들이 울기 시작한다

새들 소리에 후두둑 후둑 떨구더니

초록의 물결이

철철철 넘쳐난다

숲이 쏟아놓고 숲이 잠긴다


여기 와서 침묵하니

내 침묵에 내가 잠긴다

숲이 숲같지 않구나

내 몸 밖의 것 같지 않구나

터진 구름 사이 푸른 하늘도

내 마음 밖의 것 같지 않구나

 

 

 

 

 

 

4.jpg

 

고찬규, 섬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천 년을 천 년이라 생각지도 않고

 

 

 

 

 

 

5.jpg

 

권혁소, 어떤 패착




나이 먹으면 그만큼

시를 잘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기다린 것

패착이었다

사랑에는 여유가 생기고

이별에는 무심할 줄 알았다

역시 패착이었다

옛 애인들의 이름도 까먹는

가능성을 소실하는 세월에 이르러

불멸의 사랑을 꿈꾸다니

시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노동만이 눈부신 겨울이 지고

가소로운 망상 위에 눈이 덮인다

한 사나흘 죽었다 깨어났으면 좋겠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