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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92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6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1/07/19 21:08:2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동순, 봄비




겨우내

햇볕 한 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 밑 마늘 광 위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 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 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 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이 스민다

 

 

 

 

 

 

2.jpg

 

김광림, 천근(千斤)의 우수(憂愁)




아무도

이 무게를

들어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얼굴은

능히

이를 감내한다

아무렇게나

움켜잡아

내꼰지는

크레인일 수는 없지만

나일강의 흙탕물을

들이키고도

말없는

스핑크스처럼

 

 

 

 

 

 

3.jpg

 

신동집, 송신(送信)




바람은 한로(寒露)의

음절을 밟고 지나간다

귀뚜라미는 나를 보아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운 돌에 수염을 착 붙이고

멀리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받아 읽는 가을의 사람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을 멍하니 잠시고 있다

귀뚜라미의 송신도 이내 끝나면

하늘은 바이없는

청자(靑瓷)의 심연이다

 

 

 

 

 

 

4.jpg

 

장정일, 하숙(下宿)




녀석의 하숙방 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만 사립대 영문과 리포트가 있고 영한사전이 있고

재떨이엔 필터만 남은 켄트 꽁초가 있고 씹다 버린 셀렘이 있고

서랍 안에는 묶은 플레이보이가 숨겨져 있고

방 모서리에는 파이오니아 앰프가 모셔져 있고

레코드 꽂이에는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랩튼이 꽂혀 있고

방바닥엔 음악 감상실에서 얻은 최신 빌보드 차트가 팽개쳐 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 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5.jpg

 

박목월, 빈 컵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거울 아침에

세계는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죠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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